신안역(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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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강원도의 도로망인 은계도에 속한 역으로, 오늘날 북한 지역인 강원도 회양군에 위치해 있었음.

개설

신안역(新安驛)은 조선 세종 때 역을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강원도 회양부의 신양역(新揚驛)과 동안역(東安驛)이 합쳐져 생겨났다. 그 뒤 세조 연간에 전국의 역로(驛路)를 44역도(驛道)-537속역(屬驛) 체제로 개편하면서 은계도(銀溪道)를 구성하는 역의 하나가 되었고, 이후 갑오개혁 때까지 존치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조선 세종 연간인 1424년(세종 6)에는 고려시대의 역제(驛制)를 개편하여 역로를 새롭게 재정비했는데, 신안역은 그 과정에서 회양부에 있던 신양역과 동안역이 합쳐져 생겨났다(『세종실록』 6년 3월 25일). 신안역은 생창역(生昌驛)과 함께 함길도의 국경 상황을 중앙에 치보(馳報)하는 대로(大路)에 위치해 있었다.

조직 및 역할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 회양 편에 따르면, 신안역에는 대마(大馬) 2필, 기마(騎馬) 2필, 복마(卜馬) 9필 등 총 13필의 역마와, 역리(驛吏) 14명, 역노(驛奴) 130명, 역비(驛婢) 16명이 배속되어 있었다.

변천

조선 세종 연간에 전국의 역로를 개편할 당시 강원도에는 보안도(保安道)·대창도(大昌道)·평릉도(平陵道) 등 3개의 역도가 있었다. 하지만 신안역은 은계역(銀溪驛) 등 18개 역과 더불어 기존의 역도에 속하지 않는 역이었다. 세조대에 들어와서는 대창도가 상운도(祥雲道)로 변경되고 은계도(銀溪道)가 신설되면서, 강원도의 역로는 은계도·보안도·상운도·평릉도의 4개 역도 체제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신안역은 은계도찰방에 속하는 17개 역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세조실록』 8년 8월 5일). 이후 조선후기까지 은계도에 소속된 역으로 존속하였으나, 1896년(건양 1)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폐지되었다.

한편 성종대인 1473년(성종 4)에는 신안역과 은계역을 비롯한 강원도 지역의 6개 역이 쇠퇴하여 피폐하다는, 은계도 역리의 장고(狀告)에 의거하여, 이 지역 역에서 근무하는 군관(軍官)의 양료(養料) 즉 식량을 군자미두(軍資米豆)로 공급하게 하였다(『성종실록』 4년 11월 1일). 또 1476년(성종 7)에는 신안역과 회양역의 조폐(凋弊)가 심해지면서 인력이 부족해지자, 강원도 및 다른 도에서 도형(徒刑)과 유형(流刑)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사람을 역의 향리로 삼도록 하였다(『성종실록』 7년 6월 18일).

신안역의 위치는 『여지도서』에는 회양도호부 동남쪽 30리,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회양도호부 남쪽 30리 지점으로 기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 『여지도서(輿地圖書)』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대동지지(大東地志)』
  • 조병로, 『한국근세 역제사연구』, 국학자료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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