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역(황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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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황해도 지역의 역도 중 하나인 청단도에 속한 역.

개설

남산역(南山驛)은 조선 세조 때 역제(驛制)를 41역도(驛道)-543속역(屬驛) 체제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청단도(靑丹道)의 속역으로 편제되었다. 황해도 해주목에 위치하였으며, 이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조선시대 후기에 폐지된 것으로 추정된다.

설립 경위 및 목적

남산역의 설치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세조 때 신설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황해도 지역의 역도와 속역 내역에는 그 명칭이 보이지 않지만, 1462년(세조 8)에 황해도 지역의 역도를 정비하면서 청단도의 속역으로 남산역을 편제했다는 기록을(『세조실록』 8년 8월 5일) 확인할 수 있다.

조직 및 역할

조선시대에는 역역(驛役)을 원활하게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 역참에 역리(驛吏)와 역노비(驛奴婢) 등을 포함한 다양한 역민(驛民)을 편성하였으며, 역의 재정에 충당하도록 역위전(驛位田) 또는 마전(馬田)을 지급하였다. 남산역에도 역민과 역마가 배속되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각 역의 역속(驛屬)과 역마, 역전(驛田) 등과 관련된 내용이 비교적 상세히 실려 있는 『여지도서(輿地圖書)』 등에 남산역에 관한 기록이 보이지 않아 구체적인 규모는 알 수 없다.

변천

1460년에는 역로(驛路)가 멀어 순시하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역마 또한 곤폐하다는 병조의 지적에 따라 역로를 개편하였는데, 이때 남산역은 청단역(靑丹驛)·금곡역(金谷驛)·심동역(深洞驛)·신행역(新行驛)·망정역(望汀驛)·금강역(金剛驛)·문라역(文羅驛)·유안역(維安驛) 등 8개 역과 더불어 청단도에 소속되어 찰방(察訪)의 지휘를 받았다. 그 뒤 조선전기의 역참 제도가 완비된 『경국대전(經國大典)』 체제에서도 남산역은 변함없이 청단도의 속역으로 편제되었다.

이후 남산역은 조선후기인 영조대 이전에 폐지된 것으로 추정된다.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 평안도 해주목 조에 당시 청단도의 속역으로 청단역·금곡역·심동역·문라역·금동역·신행역·유안역 등만 기록되어 있을 뿐 남산역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기 때문이다. 1865년(고종 2)에 간행, 반포된 『대전회통(大典會通)』 외관(外官) 조에서도 황해도의 역도를 소개하면서 청단도의 속역으로 남산역을 언급하고 있지만, 보충 기록에는 남산역이 제외되었다고 언급된 점도 그 근거가 된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조병로, 『한국근세 역제사연구』, 국학자료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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