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柴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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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방과 취사에 소요되는 땔나무를 채취하는 공동 이용지.

개설

원칙적으로 시장은 특정 기관이나 개인이 사적으로 점유하거나 소유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하지만 각사와 왕실은 시장을 일정하게 배정받아 땔나무로 쓰는 풀 시초(柴草)의 공급지로 활용하였다. 이는 시장을 사적으로 점유하는 빌미가 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시장은 절수(折受)의 형태로 궁방·아문의 사적인 지배의 대상이 되어 갔다.

내용·특징 및 변천

조선시대 시장은 통상 ‘산림천택’의 범주에 속하여 백성의 공동 이용지로 규정되었다. 하지만 실상은 양반이나 왕실은 과전(科田)에 입각하여, 아문은 시초장(柴草場)에 입각하여 신(薪)·탄(炭)·초(草)를 조달하고 있었다. 이는 이미 고려시대 전시과에서 시지(柴地)를 지급하는 전통과도 관련이 있었다.

『경국대전』에 나타난 관서별 시장의 규모는 봉상시·상의원·사복시·군기시·예빈시·내수사의 시장은 둘레 20리, 내자시·내섬시·사재감·선공감·소격서·전생서·사축서는 둘레 15리, 사포서는 둘레 5리로 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각 관서는 이 규정을 준수하지 않고 이보다 많은 시장을 차지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더구나 성종 때부터 왕이 왕자·공주에게 시장을 사여하는 경우가 많아지자 점차 시장은 사점(私占)의 대상이 되어 갔다. 그와 더불어 권세가·토호 등도 시장을 사점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시장을 사점하고, 노비를 통해 땔나무를 조달하거나 주민들에게 시장을 이용하는 대가로 땔나무를 수취하기도 하였다. 사점의 대상이 된 시장은 대체로 서울 주변이나 한강변으로 인구가 조밀하여 땔감의 수요가 많은 지역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였다.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시장의 사점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궁방·아문 등은 절수와 입안(立案)의 방식으로 시장을 확보하여 운용하였다. 사점한 시장에서는 땔감뿐 아니라 봉밀(蜂蜜)·마포(麻布) 등 갖가지 물품을 수취하였다. 한편, 인구의 증가와 농지의 개간으로 시장에서는 화전(火田)의 개간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제 시장의 사적 점유는 시장 자체보다 시장에 있는 화전을 확보하기 위한 방편으로 옮아가기 시작하였다(『현종개수실록』 4년 5월 25일).

시장의 소유와 거기서 발생하는 이익이 땔나무에 국한되지 않게 되자, 시장 절수 지역도 땔감 운반에 용이한 곳에 국한될 필요가 없어졌다. 이로 인해 심지어는 시장이라는 명목 없이 산전(山田)·화전을 직접 절수하는 경우도 크게 늘어났다. 시장과 화전의 구분은 사실상 무의미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궁방과 아문은 절수를 통해 확보한 시장과 화전을 둔전으로 만들었고 여기에서 호세(戶稅)·화전세(火田稅)를 비롯하여 다양한 현물을 거두어들였다. 원칙적으로 시장은 지역민의 공동 이용지였고 화전세는 지방 재정의 중요한 수입원이었다. 이 때문에 시장의 절수를 둘러싸고 분쟁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정부에서도 시장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현종대에 화전 수세 기준이 강화·개선되고 시장의 상당수가 혁파되었다. 하지만 화전 절수가 계속되고 있는 상태에서 시장을 혁파하는 효과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경종대에는 시장의 절수를 비변사(備邊司)서경(署經)을 받은 후 집행하도록 하는 조치가 취해졌다.

영조대에는 화전의 수세를 궁방이나 아문이 직접 궁차(宮差)도장(導掌)을 파견하여 수세하는 것을 지양하고, 수령이 답험수세(踏驗收稅)하여 이를 궁차나 도장에게 주는 방식으로 변화하였다. 정조대에 들어서는 궁방의 궁차·도장 파견을 금지하고 지역 수령이 호조에 상납하면 호조에서 궁방에 이송해 주는 형태로 바뀌었다. 시장과 화전에 대해 취해진 또 하나의 조처는 종실집복(從實執卜), 수기수세(隨起收稅)의 원칙을 준수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는 세금을 거두는 과정에서 자연재해를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실제 경작이 가능한 실결수 중심의 수취를 통해 보다 합리적인 방법으로 세금을 거두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참고문헌

  • 송양섭, 「정조의 왕실재정 개혁과 ‘궁부일체’론」, 『대동문화연구』 76.
  • 이경식, 「조선후기 왕실·영아문의 시장사점과 화전경영」, 『동방학지』 77·78·79합집, 1993.
  • 김선경, 「조선후기 산림천택 사점에 관한 연구」, 경희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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