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원도(連原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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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충청도 충주의 연원역을 중심으로 편제한 역도.

개설

연원도(連原道)는 충청도 지역에 속한 역도(驛道)로, 연원역(連原驛)을 비롯해 14개의 속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조선초에 설치된 뒤 조선후기까지 존속하였으나, 1896년(고종 33) 1월에 폐지되었다.

내용 및 특징

연원도는 율봉도(栗峰道)·성환도(成歡道)·이인도(利仁道)·금정도(金井道)·시흥도(時興道) 등과 더불어 충청도 지역에 설치되었다. 연원역·단월역(丹月驛)·황강역(黃江驛)·수산역(水山驛)·안음역(安陰驛)·안부역(安富驛)·신풍역(新豐驛)·인산역(仁山驛)·감원역(坎原驛)·용안역(用安驛)·장림역(長林驛)·영천역(靈泉驛)·오사호역(吾賜乎驛)·천남역(泉南驛) 등 14개 속역이 소속되어 있었으며, 중심 역인 연원역에는 찰방(察訪)이 파견되어 역무를 맡아보았다. 충주를 중심으로 북쪽의 여주, 남쪽의 문경·연풍·음성·괴산, 동쪽의 제천, 동남쪽의 청풍·단양으로 이어지는 역로(驛路)를 관할하였다.

변천

고려의 역도를 계승한 조선 왕조가 언제부터 역도를 개혁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태종과 세종대의 역도 개편을 거쳐 1457년(세조 3) 9월에는 수도 주변의 경기 여러 역과 강원·충청도의 일부 역을 합속하여 경기좌우도(京畿左右道)·경기충청좌우도(京畿忠淸左右道)·경기충청도(京畿忠淸道)·경기강원도(京畿江原道) 등 6개의 역도로 나누어 역승(驛丞)을 폐지하고 정역찰방(程驛察訪)을 설치하였다(『세조실록』 3년 9월 12일). 이후 1460년(세조 6)과 1462년(세조 8)의 역제 개편을 통해 역도를 완성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충청도에는 연원도 외에 율봉도(栗峯道)·일신도(日新道)·성환도(成歡道)·황강도(黃江道)·증약도(增若道)·시흥도(時興道)·금정도(金井道) 등이 있었다. 1433년(세종 15)에는 충청도감사의 건의에 따라 연원도역승을 혁파하고 경기충청도정역찰방으로 개편하였다(『세종실록』 15년 1월 7일). 1457년에 역제를 개편할 때는 이 체제가 그대로 유지되었으나, 1462년(세조 8)에 충청도의 역도를 연원도·율봉도·성환도·이인도·금정도·시흥도로 개편, 확정하였다. 연원도의 속역으로는 충주역·단월역·인산역·감원역·신풍역·안부역·가흥역(可興驛)·용안역(龍安驛)·황강역·수산역·장림역·영천역(令泉驛)·오사역(吾賜驛)·천남역·안음역 등 15개 역을 두었다.

1808년(순조 8)에 편찬된 『만기요람(萬機要覽)』에는 연원도의 속역이 가흥역·황강역·영산역(永山驛)·장림역·용안역·단월역·안부역·신풍역·인산역·감원역·천남역·안음역·영천역·오사역 등 14개 역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비해 1865년(고종 2)에 편찬된 『대전회통(大典會通)』에 따르면, 연원도에는 단월역·인산역·감원역·신풍역·안부역·가흥역·용안역(用安驛)·황강역·수산역·장림역·영천역·오사역·천남역·안음역 등 14개의 속역이 소속되어 있었다. 『만기요람』에 기록된 영산역이 빠지고 수산역이 포함되었으며 용안역이 개칭되었다. 이를 통해 19세기에 연원도의 속역 구성에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연원도는 1896년 1월 18일,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 『대전회통(大典會通)』
  • 『만기요람(萬機要覽)』
  • 조병로, 『韓國近世 驛制史硏究』, 국학자료원, 2005.
  • 유선호, 「朝鮮初期의 驛路와 直路」, 『역사교육』70,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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