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원일(三元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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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3원일(元日)인 상원일, 중원일, 하원일을 말함.

개설

도교에서는 상원일(上元日), 중원일(中元日), 하원일(下元日)을 가장 중요한 날로 생각하여 이를 흔히 삼원일(三元日)이라고 통칭한다. 상원일은 음력 1월 15일, 중원일은 음력 7월 15일, 하원일은 음력 10월 15일을 가리킨다. 이 날에는 각종 도교 행사와 초례를 거행하여 신에게 축원한다.

내용 및 특징

도교에서는 상원일, 중원일, 하원일을 삼원일이라 하여 이 날에 초례를 지낸다. 이는 도교에서 천상의 선관(仙官)이 1년에 3번, 삼원일에 선악을 살펴 그에 따라 장수와 화복을 주는 날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상원일에는 천관(天官)이 복을 내리는 때라고 하고, 중원일에는 지관(地官)이 죄를 구해 주는 날이라고 하며, 하원일에는 수관(水官)이 액운을 막아 주는 날이라고 한다. 이 날이 되면 도사와 사람들은 초례를 거행하여 복을 빌었다.

상원(上元)은 흔히 정월 대보름이라고 한다. 이 시기는 농사철로 접어드는 때로, 마을 공동으로 동제(洞祭)와 각종 놀이가 펼쳐진다. 정월 대보름 민속 중에서 보름날 전날 밤에 하는 ‘보름밤 지키기’라는 풍속이 있다. 보름밤 지키기는 정월 열나흗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 하여 잠을 자지 않는 것이다. 만약 자는 사람이 있으면 눈썹에 쌀가루나 밀가루를 발라놓는다. 이 풍속은 이 날에 천관(天官)이 내려와 인간의 잘잘못을 따져서 수명을 결정하는데, 잠을 자지 않으면 천관이 인간의 잘못을 따질 수 없게 된다는 믿음에서 시작된 것이다. 즉 보름밤 지키기 풍습은 도교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원일은 도교의 명절로서 이날에 초례를 거행하여 풍우순조와 무병장수를 기원하였다. 그리고 중원일은 백종(百種), 우란분절(盂蘭盆節), 망혼일(亡魂日)이라고도 한다. 이날은 불교의 명절이기도 한데, 이날에 우란분재를 열어 죽은 이의 명복을 빈다고 하여 우란분절 혹은 망혼일이라고 한다.

하원일도 도교의 명절로서 이날에 초례를 거행하여 풍우순조와 무병장수를 기원하였다. 우리 민속에서도 하원일이 있는 10월을 중요하게 여겼다.

변천

삼원일에 초례가 거행되었음은 이규보(李奎報)의 「상원청사(上元靑詞)」, 정포(鄭誧)의 「신격전행중원초례문(神格殿行中元醮禮文)」, 이곡(李穀)의 「하원초청사(下元醮靑詞)」 등의 청사가 남아 있는 사실로서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청사로 보아 고려시대에는 삼원일에 정기적으로 초례가 행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삼원일에는 정기적으로 초례가 거행되었다. 1409년(태종 9)에 매월 삭망(朔望)에 거행하던 것을 삼원일과 사립일(四立日)에 태일초(太一醮)를 거행하도록 하였다(『태종실록』 9년 12월 3일). 그리고 1412년(태종 12) 1월 15일에는 상원일이라 하여 태일에 초례를 거행하기 위해 연등을 대궐 안에 설치했다(『태종실록』 12년 1월 15일). 이때 설치된 연등은, "내자시(內資寺), 내섬시(內贍寺)에서 각각 종이등 500개를 바치고, 또 용, 봉(鳳), 호랑이, 표범 등의 모양으로 만든 것이 많았다."고 한다.

1414년(태종 14) 10월 14일 밤에 천둥이 울리고 번개가 치고 바람이 불고 비가 오자 소격전에서 하원일 초례를 지내 기양(祈禳)하였다(『태종실록』 14년 10월 14일).

1445년(세종 27)에는 초례의 재계 일수를 정하였는데, 소격전에서 상원일에 거행하는 삼계대초(三界大醮)와 하원일에 행하는 영보도량(靈寶道場)은 모두 3일 간으로 하는 것으로 정하였다(『세종실록』 27년 3월 14일).

숭유 정책에 따라 불교와 함께 도교도 비판을 받았다. 1477년(성종 8)에 대사간최한정(崔漢禎)이 상소하여, 삼원(三元)과 팔절(八節) 때에 소용되는 물자의 비용이 매우 많은데, 이것은 다 백성의 힘에서 나오는 것이고, 음사(淫邪)의 일에 비용을 들일 수 없다고 비판하였다(『성종실록』 8년 1월 13일).

삼원일에 거행되던 초례는 중종 이후 소격서의 철폐와 복구, 그리고 임진왜란 이후 영구히 소격서가 혁파되면서 국가 주도로 거행되던 삼원일 초례도 시행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상원일의 ‘보름밤 지키기’는 대보름 풍속으로 계속해서 행해졌다.

의의

삼원일은 우리나라 역사상 존재했던 도교의 실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보름밤 지키기’ 풍습은 바로 도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삼원일은 도교의 절일(節日)로서 정기적으로 초례가 행해졌다.

참고문헌

  • 酒井忠夫 외, 최준식 옮김, 『도교란 무엇인가』, 민족사, 1991.
  • 窪德忠, 최준식 옮김, 『도교사』, 분도출판사, 2000.
  • 김철웅, 『한국중세의 길례(吉禮)와 잡사(雜祀)』, 경인문화사,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