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성역(聊城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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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도 지역의 역도 중 하나인 유곡도에 속한 역으로, 오늘날의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에 위치해 있었음.

개설

고려전기 전국의 525개 역을 22개 역도(驛道)로 편성하는 과정에서, 요성역(聊城驛)은 상주도(尙州道)에 소속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세조대에 역제(驛制)를 41역도-543속역 체제로 개편할 때 유곡도(幽谷道)를 구성하는 역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경상도 문경군에 위치하였으며, 1896년(고종 33)에 폐지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역(驛)은 중앙 집권 체제를 유지하고, 중앙과 지방의 행정 명령 계통을 확립하기 위한 육상 교통 기관으로 설치되었다. 왕명(王命) 및 긴급한 군사 기밀의 전달, 사신의 왕래에 따른 영송지대(迎送支待) 등을 주로 담당하였으며, 그밖에 진상품이나 공부(貢賦)의 운송 및 왕래인(往來人)의 규찰 등을 맡아보았다. 요성역도 이러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고려시대부터 영남 지역에 설치되었다.

조직 및 역할

역참에는 역역(驛役)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 역리(驛吏)와 역노비(驛奴婢) 등을 포함한 다양한 역민(驛民)이 편성되어 있었으며, 역의 재정에 충당하기 위해 역위전(驛位田) 또는 마전(馬田)이 지급되었다. 조선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요성역에는 역리 130명, 역노 10명, 역비 3명과, 대마(大馬) 2필, 중마(中馬) 2필, 복마(卜馬) 6필 등 총 10필의 역마가 배속되어 있었다. 찰방역(察訪驛)은 유곡역(幽谷驛)이다.

변천

『고려사(高麗史)』 「병지(兵志)」 참역(站驛) 조에 따르면 요성역은 고려시대 상주도에 소속된 25개 속역 가운데 하나로, 상주의 속현인 문경에 소속되어 있었다. 정확한 설치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고려의 역제가 22역도-525속역 체제로 정비된 1061년(고려 문종 15)에서 1136년(고려 인종 14) 사이에 상주도에 속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초에 전국적인 역도-역로 조직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유곡도에 소속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유곡역·덕통역(德通驛)·낙양역(洛陽驛)·낙동역(洛東驛)·낙원역(洛源驛)·낙서역(洛西驛)·장림역(長林驛)·청리신역(靑里新驛)·공성신역(功城新驛)·상평역(常平驛)·구미역(仇彌驛)·영향역(迎香驛)·안곡역(安谷驛)·상림역(上林驛)·쌍계역(雙溪驛)·안계역(安溪驛)·수산역(守山驛)·용궁신역(龍宮新驛)·지보역(知保驛)·소계역(召溪驛) 등과 함께 유곡도의 속역으로 기재돼 있다.

1460년(세조 3)에는 유곡도가 장수도(長守道)에 통합됨에 따라 장수도에 속하게 되었다. 뒤이어 1462년(세조 8)에는 각 도의 역참을 파하고 역로를 정비하여 찰방(察訪)역승(驛丞)을 두면서 다시 유곡도를 복구하였다. 그 과정에서 요성역은 유곡역·덕통역·지보역·수산역·쌍계역·안계역·낙평역(洛平驛)·낙동역·낙양역·낙서역·장림역·낙원역·상림역·영향역·구미역·안곡역·수계역 등 17개 역과 함께 유곡도찰방의 관할이 되었다. 이후 조선시대 전기의 역참 제도가 완비된 『경국대전(經國大典)』 체제에서는 대은역(大隱驛)이 포함되는 등 유곡도의 속역이 약간 변경되었으나, 요성역은 여전히 유곡도에 속하였다.

『대동지지(大東地志)』에 따르면, 요성역은 문경현 관아 동쪽 2리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오늘날의 행정 구역으로는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요성리에 해당한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여지도서(輿地圖書)』
  • 『대동지지(大東地志)』
  • 조병로, 『한국근세 역제사연구』, 국학자료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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