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역(富平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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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도 지역의 역도 중 하나인 장수도에 속한 역으로, 오늘날의 울산광역시 중구 서동에 위치해 있었음.

개설

부평역(富平驛)은 조선초기에 울산도호부에 신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황산도에 소속되어 황산도 역승(驛丞)의 지휘를 받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뒤 세조 연간인 1460년에는 송라도(松羅道)의 속역으로 편제되었다가, 1462년에 다시 황산도로 이속되었다. 성종대에 편찬된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경상좌도의 역도(驛道)장수도(長水道)에 소속된 것으로 나와 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부평역은 고려시대의 역도와 속역이 기록되어 있는 『고려사(高麗史)』「병지(兵志)」 참역(站驛) 조에는 그 명칭이 보이지 않는다. 그에 비해 『세종실록』「지리지」 경상도 조에는 잉보역(仍甫驛)·노곡역(奴谷驛)·구어역(仇於驛) 등과 더불어 황산도의 속역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부평역의 설치 시기는 세종대 이전으로 추정할 수 있다.

변천

조선시대에는 건국 직후부터 수도인 한양을 중심으로 기존의 역로를 개편했는데, 부평역은 그 과정에서 경상도 지역의 역도인 황산도에 소속되었다.

이후 1457년(세조 3)의 역승 폐지 조치로 찰방의 순시 범위가 넓어지면서 1460년(세조 6)에는 역로가 멀어 순시하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인마(人馬) 또한 곤폐하다는 병조의 지적에 따라 역로를 재편했는데, 이때 부평역은 안기도(安奇道) 및 장수도(長守道)의 일부 속역과 더불어 송라도에 소속되었다(『세조실록』 6년 2월 5일). 이어 1462년(세조 8)에도 역도의 개편이 있었는데, 그 결과 부평역은 황산역(黃山驛)·윤산역(輪山驛)·위천역(渭川驛)·소산역(蘇山驛)·휴산역(休山驛)·신명역(新明驛)·아월역(阿月驛)·간곡역(肝谷驛)·굴화역(堀火驛)·덕천역(德泉驛) 등 10개 역과 함께 송라도에 소속되었다. 송라도의 속역은 총 13개였다(『세조실록』 8년 8월 5일).

이후 부평역은 송라도의 속역으로 존재하다가, 조선전기 역참 제도가 완비된 『경국대전』 체제에서는 청통역(淸通驛)·아화역(阿火驛)·우곡역(牛谷驛) 등 14개 역과 더불어 경상좌도의 역도인 장수도에 소속되었다. 이후 조선시대 후기까지 장수도의 속역으로 존속하다가, 1896년(고종 33)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폐지되었다.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 경상도 울산부읍지에 따르면, 부평역은 오늘날의 울산광역시 중구 서동에 위치한 병영성(兵營城)의 서쪽에 있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조병로, 『한국근세 역제사연구』, 국학자료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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