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당(西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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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때 심의겸을 중심으로 형성된 붕당.

개설

서당(西黨)은 조선시대 처음으로 형성된 동인(東人)과 서인(西人) 중 서인의 다른 표현이다. 서객(西客)이라고 하였으며, 동인의 경우도 동당(東黨)으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붕당 형성의 계기가 되었던 인물 중 한 명인 심의겸(沈義謙)이 한양의 서쪽에 살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서당은 정치적 상황에 따라 몇 개의 분파로 분화되다가 숙종 초 노론과 소론으로 분리되며, 당쟁을 주도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조선시대 붕당의 성립은 1575년(선조 8)경으로, 당시 동·서 분당은 개인적으로는 심의겸과 김효원(金孝元) 사이의 반목과 질시가 동기가 되었다[『선조실록』 13년 7월 1일]. 그러나 이는 단순한 개인적인 감정 때문이기보다는 낭천제(郎薦制) 운영 문제나 문소전(文昭殿) 논의 등 당시 국정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를 놓고 발생한 대립의 결과였다. 김효원을 중심으로 한 신진 사류가 동인, 심의겸을 지지하는 기성 사류들이 서인이 되었다.

조직 및 역할

심의겸을 중심으로 그를 지지하던 사람들은 박순(朴淳)·김계휘(金繼輝)·정철(鄭澈)·윤두수(尹斗壽)·구사맹(具思孟) 등으로 이들을 서당 또는 서인이라고 불렀다. 심의겸이 한양의 서쪽인 정릉방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인들은 명예와 절의를 숭상하였고, 서인들은 노성하여 몸가짐을 신중히 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변천

인조반정 이후 서당은 공서(功西) 또는 청서(淸西)로 나뉘었고, 공서는 다시 노서(老西)와 청서(淸西) 등으로 나뉘었다. 인조 말부터 효종 초에는 서인들이 낙당(洛黨)·원당(原黨)·산당(山黨)·한당(漢黨) 등으로 나뉘었다가 숙종 초에 서당은 노론과 소론으로 분파되었으며, 이후 노론과 소론은 정치의 중심에서 활동하였다.

참고문헌

  • 『당의통략(黨議通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