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평역(高平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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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도 지역의 역도(驛道) 중 하나인 김천도에 속한 역으로, 오늘날의 경상북도 칠곡군 칠곡읍에 위치해 있었음.

개설

고평역(高平驛)은 고려시대 혹은 조선시대 초기에 설치된 것으로 보이나, 정확히 언제 설치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세조 연간에 역제(驛制)를 41역도-543속역 체제로 개편할 때 김천도(金泉道)를 구성하는 역 가운데 하나로 편제되었다. 경상도 칠곡현에 위치해 있었으며, 갑오개혁 때까지 존속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세종대에 전국적인 역도-역로 조직이 마련될 당시에는 고평역의 역명이 확인되지 않으며, 세조 연간부터 고평역의 명칭이 확인된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김천도승(金泉道丞)이 관할하는 16개의 역명이 등장하는데, 이 가운데 팔거신역(八莒新驛)이 고평역으로 개명한 것으로 보인다.

조직 및 역할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 칠곡현 조에 따르면, 고평역에는 역리(驛吏) 63명과 중마(中馬) 2필, 복마(卜馬) 6필 등 총 8필의 역마가 배속되어 있었다.

변천

1462년(세조 8)에는 병조의 건의에 따라, 각 도의 역참을 혁파하고 역로를 정비해 찰방(察訪)역승(驛丞)을 두었다. 그 과정에서 고평역은 김천역(金泉驛)·문산역(文山驛)·추풍역(秋豐驛)·작내역(作內驛)·장곡역(長谷驛)·무천역(茂村驛)·생초역(省草驛)·성기역(星奇驛)·답계역(踏溪驛)·안언역(安彦驛)·무계역(茂溪驛)·설화역(舌化驛)·양원역(楊原驛)·동안역(東安驛)·양천역(楊川驛)·부쌍역(扶雙驛)·안림역(安林驛)·팔진역(八鎭驛)·권빈역(勸賓驛)·금양역(金陽驛) 등 21개 역과 함께 김천도에 소속되어 김천도찰방의 관할이 되었다. 그 뒤 조선시대 후기까지 김천도의 속역으로 존속하다가, 1896년(고종 33)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철폐되었다.

『여지도서』에 따르면, 고평역은 칠곡현 관아 남쪽 30리 지점에 있었다. 오늘날의 행정 구역으로는 대구광역시 북구 읍내동에 해당한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 『만기요람(萬機要覽)』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조병로, 『조선전기 역제사연구』, 국학자료원, 2005.
  • 오일순, 「고려시대 역제의 변동과 잡색역」, 연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0.
  • 정요근, 「고려전기 역제의 정비와 22역도」, 『한국사론』45, 2001.
  • 정요근, 「高麗·朝鮮初의 驛路網과 驛制 硏究」,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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