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역(舌化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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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초기 경상도 성주에 위치했다가, 1685년(숙종 11)부터 대구로 소재지가 변경된 역.

개설

설화역(舌化驛)은 원래 경상도 성주에 위치하였으나, 1685년(숙종 11) 설화역이 위치한 화원(花園) 지역이 대구로 이속된 후부터 소재지는 대구가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고려 22역도 중 경산부도(京山府道)에 소속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성현도(省峴道) 소속의 역(驛)으로 편제되었다.

내용 및 변천

설화역은 고려시대에는 경산부(京山府: 현 성주)의 속현인 화원현에 위치했으며, 22역도 중 경산부도 소속의 역으로 편제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설화역은 『세종실록』「지리지」에 김천도(金泉道) 소속의 역으로 기록되어 있다. 1462년(세조 8) 전국적인 역도제(驛道制)의 개편 때에도 설화역은 김천도 소속으로 편성되었다(『세조실록』 8년 8월 5일). 하지만 『경국대전』에는 성현도 소속으로 기록되었으며, 『대전회통』에도 그대로 성현도 소속으로 나와 있어, 설화역은 원래 김천도에 속해 있었으나,『경국대전』 편찬 즈음부터 성현도의 소속 역으로 편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설화역은 성주목 동쪽 71리(약 27.9㎞) 지점에 위치한 옛 화원현 서쪽 5리(약 2㎞) 지점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1685년(숙종 11) 설화역이 위치한 옛 화원 지역이 대구로 이속되면서 설화역의 소재 지역은 대구가 되었다.

『여지도서』에 의하면, 설화역은 대구에 위치하였으며, 대마(大馬) 1마리, 중마(中馬) 2마리, 복마(卜馬) 9마리, 역리(驛吏) 286명, 역노(驛奴) 21명, 역비(驛婢) 218명이 배속되어 있었다.

설화역은 서쪽의 성주와 고령, 남쪽의 현풍, 동쪽의 대구 등지로 연결되는 교통로 상에 위치하였다. 설화역에서 서쪽으로는 성주 무계역(茂溪驛), 남쪽으로는 현풍 쌍산역(雙山驛) 등과 연결되었다.

1896년(고종 33)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전국의 역들이 폐지되면서 설화역도 폐지되었다.

설화역의 위치는 현재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설화리에 해당한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정요근, 「고려·조선초의 역로망과 역제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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