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신재(忌晨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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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왕·선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사찰에서 올리는 재(齋).

개설

불사(佛事)로서 절에서 행해지던 기신재(忌晨齋)는 고려 때 기신도량[忌晨道場]의 형태로 이미 있었고, 기신도량이 폐지된 1516년(중종 11) 이후 유교적인 기신제(忌晨祭)로 변하였다. 기신제는 존족친(尊族親)의 기일에 행하는 제사다. 조선초에는 초기(初期), 즉 죽은 지 1년이 되는 기일의 재는 대상재(大祥齋)라 일컫고, 2년째 되는 재기(再期)부터 기신재(忌晨齋)라고 한 경우도 있다. 『세종실록』에는 소상(小祥) 기신재라는 용어를 쓰기도 하였다(『세종실록』 5년 5월 8일).

연원 및 변천

고려 때에 기신도량이 있었으나, 기신재의 연원은 태조 때부터 시작된다. 태종은 신덕왕후(神德王后)의 기신재를 흥천사(興天寺)에서 행하였다(『태종실록』 10년 8월 13일). 태종은 불교를 배척하였지만 기신재는 폐하지 않았고, 이를 이어 후대 왕들은 행사에 따른 의궤를 남길 정도로 기신재를 중요시하였다.

기신재는 중종 때에 와서 비로소 폐지되었는데, 기신재 혁파 건의가 중종 때 가장 빈번하였다. 그러나 중종은 선왕이 해 오던 관례를 갑자기 혁파할 수 없다며 윤허를 내리지 않다가 1516년(중종 11) 6월 2일 기신재를 영구히 혁파하라는 분부를 예조를 통해 내렸다.

그 내용을 보면, 기신재를 베푼 것은 전조(前朝)에서 시작되어 상하가 모두 재를 베풀어 복을 비는 것에 익숙해지고 드디어 습속이 된 것인데, 아조(我朝)에 이르러서는 이교(異敎)를 깊이 배척하여 풍속이 점점 바르게 돌아가나 기신재의 일만은 지금까지 구습을 따라 폐지하지 않았으므로 말하는 자가 다들 "고쳐 바로잡을 때는 바로 지금이다."라고 하였다.

다만 선왕조의 옛일이라 하여 차마 문득 고치지 못하고 주저하여 왔는데 대신에게 물으니 다들 고쳐야 한다 하고, 중종도 "선조를 받드는 효도에는 본디 올바른 예도가 있는 것이요 욕되게 하는 일에 구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여 이 뒤로는 선왕(先王)·선후(先后)의 기신재를 영구히 혁파하여 거행하지 말라고 하였다(『중종실록』 11년 6월 2일). 이후 명종 때 승려 보우(普雨) 등의 주장으로 내수사로 하여금 제물을 차려서 올리는 등 기신재를 다시 시행하게 되나 곧 폐지되고, 이후로는 부활하는 일이 없었다.

절차 및 내용

기신재를 위해 왕은 소(疏)와 향(香)과 축문을 친히 절에 전한다. 중들은 선왕·선후의 영가(靈駕) 또는 위패를 밖에서 목욕시킨 후에 정로(正路)를 통하지 않고 협문으로 들어가 부처 앞에 영가를 세운다. 바닥에는 지의(地衣)를 까는데, 모두 흰색으로 한다. 영가를 뜰에서 일어났다가 엎드리게 하여 마치 부처에게 절하는 모양이 되게 하며, 부처에게 마지(摩旨)를 올리고 중에 대한 공양을 마치기를 기다려 신위에 제사를 지낸다.

중종 때의 사림들은 특히 위패를 협문으로 들어가게 한 다음 부처 앞 뜰 하단(下壇)에다 배치시키고 부처에게 절을 하게 하며, 어휘(御諱)로 소문(疏文)을 쓰는 것 등을 지적하면서, 기신재를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생활·민속적 관련 사항

불교적 절차로 이루어지는 기신재는 그것이 선왕 때부터 이어져 온 관행이라는 이유로 중종 때에 이르러서야 폐지되지만, 이는 곧 불교적 관행들이 이후 급속히 사라지는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민속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기신재의 폐단을 지적하는 사항 중에는 조선초기 불사의 절차나 민속적인 내용을 알려 주는 것들도 있다.

참고문헌

  • 심효섭, 「조선전기 기신재의 설행과 의례」, 『불교학보』40, 2003.
  • 이병휴, 「조선전기 내불당·기신재의 혁파논의와 그 추이」, 『구곡황종동교수정년기념사학논총』, 1994.
  • 이현진, 「조선 왕실의 기신제 설행과 변천」, 『조선시대사학보』46, 2008.
  • 이희재, 「조선 중종대 왕실의 불교의례 -기신재를 중심으로-」, 『불교문화연구』3,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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