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함녕(李咸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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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437년(세종 19) = ?]. 조선 초기 세종(世宗) 때의 문신. 집현전(集賢殿)교리(校理)를 지냈다. 본관은 성주(星州)이다. 아버지는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이사후(李師厚)이고, 어머니 개성 왕씨(開城王氏)는 왕조(王珇)의 딸이다. 할아버지는 조선의 개국공신인 이직(李稷)이며, 증조할아버지는 고려 때 대제학(大提學)을 지낸 이인민(李仁敏) 이다.

세종 시대 활동

1435년(세종 17) 식년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집현전 교리가 되었다.[『세종실록』 17년 4월 20일],[『방목(榜目)』],[『신증동국여지승람』] 그러나 그로부터 얼마 후인 1437년(세종 19) 사망하였다.

성품과 일화

이함녕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그가 과거를 볼 시기였으나 아버지의 병으로 말미암아 시험에 나가지 못할 상황이었으나, 아버지가 명령하여 마지못해 응시하였는데 장원에 뽑혔다. 그가 과거에 급제한 날 궁문을 나와 말을 타려 할 때 그 말이 목을 돌려 모자에 꽂힌 꽃을 물어 꺾었는데, 며칠 뒤에 아버지가 사망하고 그로부터 얼마 후 이함녕 또한 죽었다. 당시 사람들은 말이 모자의 꽃을 꺾는 것이 크게 상서롭지 못한 징조라 하였다.[『용재총화(慵齋叢話)』]

후손

부인인 평양 조씨(平壤趙氏)는 조견(趙狷)의 딸로 자녀는 2남 2녀를 두었다.1남은 이장생(李長生)이고, 2남은 이숙생(李叔生)이다. 1녀는 남임(南任)의 처이며, 2녀는 홍문관(弘文館) 교리를 지낸 성간(成侃)의 처이다.

참고문헌

  • 『세종실록(世宗實錄)』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 『용재총화(慵齋叢話)』
  • 『해동잡록(海東雜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