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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05 기준 최신판



조선후기 중앙 오군영에 설치한 염초 제작소.

개설

유황, 목탄과 더불어 화약의 3대 원료 중 하나인 염초(焰硝)를 제조하기 위해 조선시대 오군영(五軍營) 휘하에 지어진 건물이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임진왜란의 발발 이후 화약병기 및 화약의 수요가 급증하자 훈련도감 아래 염초 제조를 전담하는 부속 건물로서 처음 설치되었다. 훈련도감은 이곳에서 생산된 염초를 훈련도감의 한 분영인 하도감(下都監)에 부속된 화약색(火藥色) 건물로 옮겨 다른 원료와 함께 배합하여 화약을 생산하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도성(都城) 방어를 위한 중앙 오군영이 차례로 설립되자, 훈련도감 외의 다른 군영들도 화약과 염초를 자체 조달하기 위해 염초청을 설치하였다. 군영들은 각 읍에서 분담하여 납부하는 조총·화약·연환(鉛丸)방납(防納)에도 관여하였다. 방납은 공물 납부자의 공물을 미리 대신 바치고 그 대가를 공물 납부자로부터 받는 것이었다. 보통은 방납의 대가로 공물가의 배를 징수하였다. 이들은 방납용 염초와 화약을 각 읍에 공급함으로써 막대한 시세 차익을 남기기도 하였다.

조직 및 역할

염초는 대개 질산암모늄이 풍부한 함토(醎土) 속에 많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화약의 배합 원료로 쓰기 위해서는 불순물을 제거하여 염초를 분리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였다. 염초장(焰硝匠)은 모아 놓은 함토에 물을 부어 끓인 뒤 순도 높은 염초를 분리하였다. 염초청은 야적된 함토, 물을 끓이기 위한 땔감 등을 보관하는 창고와 염초 정제 시 화재 방지를 위한 높고 큰 건물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곳에는 염초 추출을 위한 솥, 수조(水槽), 목조(木槽) 등의 기구가 배설되었다.

변천

훈련도감에 부속된 염초청의 원래 위치가 어디인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1637년(인조 15) 청계천 변 마전교(馬廛橋) 옆으로 이전한 기록이 『승정원일기』에 남아 있다. 순조대 그 넓이는 211칸에 달했다.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 때는 청군 제독황사림(黃士林)의 군대가 잠시 주둔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만기요람(萬機要覽)』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 『훈국등록(訓局謄錄)』
  • 柳承宙, 「朝鮮後期 軍需工業에 관한 一硏究-軍營門의 火藥製造實態를 중심으로-」, 『史學硏究』32, 한국사학회, 1981.
  • 柳承宙, 「朝鮮後期의 月課銃藥丸契 硏究」, 『韓國史論』9, 국사편찬위원회,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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