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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부안의 위도에 설치한 조선시대의 수군 진영.

개설

위도진은 전라북도 부안의 서쪽 바다에 있다. 전라도 세곡선이 한양으로 올라가는 서해 바닷길 길목에 있어서 요충지에 해당하였다. 17세기 인조대에 서해의 수군진성이 재편되어 주진(主鎭)인 전라우수영 산하에 2개의 거진(巨鎭)이 배치되었는데, 하나는 강진의 가리포진(加里浦鎭)이고, 다른 하나는 부안의 위도진(蝟島鎭)이었다.

1681년(숙종 7) 위도에 첨사진이 설치되고, 그 휘하에 군산(群山)에서 영광(靈光)에 이르는 8개의 수군진보(水軍鎭堡)가 배치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위도진은 17세기 서해의 요충지 중 하나였다. 1626년(인조 4) 훈련도감에서 위도에 염전·어장·둔전을 설치하였다(『인조실록』 4년 1월 11일). 전라감사 권태일(權泰一)이 부안의 위도와 옥구의 고군산에 전선을 배치하고 호서지방과 협력하여 서해 방어망을 구축하자고 제안하였다(『인조실록』 7년 3월 15일).

1681년(숙종 7)에 부안 사람 김몽두(金夢斗)와 지사 민유중(閔維重)이 위도에 수군진을 설치하는 이로움을 밝히고 이를 요청하자, 왕이 승인하였다(『숙종실록』 7년 7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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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및 역할

1681년(숙종 7)에 부안 주민 김몽두, 중앙관료 민유중, 전라도관찰사 조세환 등이 위도에 수군진 설치를 요청하였다. 이에 병조에서 수군만호를 위도에 파견하였다(『숙종실록』 7년 8월 17일).

이듬해인 1682년(숙종 8)에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이 상소하여 위도진을 첨사진으로 승격시켰다(『숙종실록』 8년 9월 4일). 1683년(숙종 9)에 위도진은 임치진·고군산진·목포진·다경포진·법성포진·검모포진·군산포진·신도진 등 8개의 수군진을 관할하게 되었다[『숙종실록』 9년 윤 6월 10일 1번째기사].

1874년(고종 11)에 위도진은 부안현 격포진 조창(漕倉)의 세곡을 한양으로 운송하는 임무를 담당하였다(『고종실록』 11년 1월 27일).

변천

조선후기 수군진은 인조대에 대대적으로 개편되었다. 즉 중앙에 오군영(五軍營)이 설치되고, 강화도를 중심으로 왼쪽으로는 황해도, 오른쪽으로는 경기·공청도·전라도·경상도에 이르기까지 각 섬을 비늘처럼 연결하는 수군진보(水軍鎭堡)가 설치되었다. 이 과정에서 전라도 부안위도에 첨사진이 설치되고, 휘하에 8개의 수군진보가 배치되었다.

위도진은 부속 섬 주민들의 행정업무와 서해 바닷길의 조운로(漕運路)를 보호하는 임무를 담당하였다.

참고문헌

  • 「부안위도진지도(扶安蝟島鎭地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