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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24일 (수) 22:04 기준 최신판



조선시대 전라도의 도로망인 삼례도에 속한 역으로, 오늘날의 전라북도 임실군에 위치해 있었음.

개설

고려시대 성종에서 문종 연간에 역로(驛路)를 22역도(驛道)-525속역(屬驛) 체제로 정비할 때, 오원역(烏原驛)은 남원도(南原道) 임실(任實)에 위치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세종대와 세조대를 거치면서 전국의 역로가 41역도-543속역 체제로 정비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삼례도(參禮道)를 구성하는 역의 하나가 되었다. 그 뒤 조선후기까지 존속하였으나, 1896년(건양 1) 1월에 폐지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고려사(高麗史)』 참역(站驛) 조에 따르면 오원역은 남원도에 속한 12개소의 역 가운데 하나로, 고려시대부터 전라도 임실 지역에 설치되어 있었다. 정확한 설치 시기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고려의 역제(驛制)가 초기의 6과-147역 체제에서 22역도-525속역 체제로 정비된 995년(고려 성종 14)에서 1067년(고려 문종 21) 사이에 남원도에 소속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세종대에 전국적인 역도-역로 조직이 마련되면서 삼례역(參禮驛)·반석역(半石驛) 등과 함께 삼례도에 속하게 되었다.

조직 및 역할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 임실현 편에 따르면, 오원역에는 역마 10필과, 역리(驛吏) 75명, 역노(驛奴) 68명, 역비(驛婢) 37명이 배속되어 있었다.

변천

조선전기 세종 연간에 전국적인 역로 조직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세조대에는 찰방(察訪)이 관할하는 역이 많고 또 역로가 멀어서 찰방이 순시하거나 사신이 왕래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 결과 역로가 쇠퇴하는 등의 폐단이 나타났다. 그에 따라 1462년(세조 8)에는 각 도의 역참을 파하고 역로를 새롭게 정비했는데, 오원역은 그 과정에서 삼례도찰방 관할이 되었다(『세조실록』 8년 8월 5일). 그 뒤 조선후기까지 삼례도에 속한 역으로 존속하였다. 1896년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폐지되었다.

오원역의 위치는 『여지도서』·『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대동지지(大東地志)』 등에 모두 남원도호부 임실현 북쪽 20리 지점으로 기록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 작성된 「조선총독부 중추원 역원 조사표」에는 임실현 북쪽 20리 지점인 임실군 오천면 선천리에 있었던 것으로 되어 있는데, 선천리는 1935년에 관촌리로 개칭되었다. 오늘날의 위치는 전라북도 임실군 관촌면 관촌리 일대이다. 관촌리는 오원역이 있었던 관계로 오원·역촌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여지도서(輿地圖書)』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대동지지(大東地志)』
  • 조병로, 『한국근세 역제사연구』, 국학자료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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