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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9일 (화) 22:59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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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효령대군 이보 |
한글표제 | 효령대군 이보 |
한자표제 | 孝寧大君 李補 |
분야 | 왕족/왕자 |
유형 | 인물 |
지역 | 한국 |
시대 | 조선 전기 |
왕대 | 태조~성종 |
집필자 | 윤경수, 김구진 |
자 | 선숙(善叔) |
호 | 연강(蓮江) |
봉작 | 효령대군(孝寧大君) |
시호 | 정효(靖孝) |
출신 | 양반, 왕족 |
성별 | 남 |
출생 | 1396년(태조 5) |
사망 | 1486년(성종 17) |
본관 | 전주(全州) |
주거지 | 서울 |
묘소소재지 | 경기도 과천 임산원(壬山原)『선원계보』 (현)서울시 서초구 방배동 190-1 |
증조부 | 이자춘(李)春) |
조부 | 이성계(李成桂): 태조(太祖) |
부 | 이방원(李芳遠): 태종(太宗) |
모_외조 | 원경왕후(元敬王后): 여흥 민씨(驪興閔氏), 민제(閔霽)의 딸 |
형제 | (형)이제(李禔): 양녕대군(讓寧大君) (동생)이도(李*): 세종(世宗), 충녕대군(忠寧大君) (동생)이종(李*): 성녕대군(成寧大君) |
처_장인 | 예성부부인(蘂城府夫人): 숙의옹주(淑懿翁主), 삼한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 해주 정씨(海州鄭氏), 정역(鄭易)의 딸 →(자녀)6남 1녀 |
자녀 | (1자)이채(李寀): 의성군(誼成君) (2자)이친(李*): 서원군(瑞原君) (3자)이합(李㝓): 보성군(寶城君) (4자)이녕(李寧): 낙안군(樂安君) (5자)이정(李定): 영천군(永川君) (6자)이의(李宜): 원천군(原川君) (1녀)이훈(李塤)의 처 (서1자)이양(李㝗): 안강정(安康正) (서1녀)전진형(全晉享)의 처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효령대군 이보(孝寧大君 李補) |
총론
[1396년(태조 5)∼1486년(성종 17) = 92세]. 조선 전기 태종~세조 때 활동한 왕자. 태종(太宗)이방원(李芳遠)의 적출 4남 4녀 중에서 제 2왕자. 봉작은 효령대군(孝寧大君)이다. 자는 선숙(善叔)이고, 호는 연강(蓮江)이다. 초명은 이호(李祜)였는데, 20세 때 이보(李*)로 고쳤다.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주거지는 서울이다. 어머니 원경왕후(元敬王后)는 여흥 민씨(驪興閔氏)민제(閔霽)의 딸이다. 양녕대군(讓寧大君)이제(李禔)의 친동생이고, 세종과 성녕대군(誠寧大君)이종(李*)의 친형이다. 당시 평균 수명은 약 55세 정도였고, 특히 궁중의 왕자들은 더욱 수명이 짧았는데, 효령대군은 드물게 92세까지 장수하였다.
세종~세조 시대 활동
1400년(정종 2) 6세 때 태학(太學)에 입학하였고, 1407년(태종 7) 13세 때 효령군(孝寧君)에 봉해졌다. 그해 겨울 정역(鄭易)의 딸 해주 정씨(海州鄭氏)와 혼인하였다. 정역은 고려 우왕 때 이방원과 함께 문과에 합격한 동방(同榜) 친구였다. 1408년(태종 8) 부인 정씨가 숙의옹주(淑懿翁主)에 봉해졌다. 1412년(태종 12) 효령대군(孝寧大君)에 진봉되었다. 1417년(1417) 정1품 대광보국(大匡輔國) 효령대군에 봉해졌고 부인은 삼한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이 되었다. 1430년(세종 12) 정1품 효령대군에 봉해졌다. 1430년(세종 12) 왕명을 받고 태종의 어용(御容)과 『선원록(璿源錄)』을 새로 만들어 선원전(璿源殿)에 봉안하고, 그해 윤12월에 문소전(文昭殿)의 친제(親祭)에 종헌관(終獻官)으로 참여하였다.
조선은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을 취하여 불교를 배척하였으나, 이보는 고려의 왕자들처럼 불가에 귀의하여 세속과 인연을 끊었다. 1418년(태종 18) 세종이 즉위할 무렵에 출가하였으나, 1422년(세종 4) 태종이 승하하자, 다시 환속(還俗)한 것 같다. 왜냐하면, 효령대군이 불가에 귀의한 것은 태종의 뜻이었기 때문이다. 1432년(세종 14) 그는 불교의 행사인 수륙재(水陸齋)를 한강에서 7일 동안 열었다. 1434년(세종 16) 1월 친형 양녕대군과 함께 임금에게 계달(啓達)하는 문서(文書)에 이름을 쓰지 않도록 청원하였는데, 이것은 왕자의 권위의식에서 탈피하기 위해서였다. 그해 4월 회암사(檜巖寺)의 중수를 건의하였고, 이듬해 회암사에서 불사를 크게 개최하였다. 그해 5월 흥천사(興天寺) 탑전(塔殿)의 수리를 관장하였다. 1450년(세종 32) 처조카인 정종(鄭悰)이 문종의 딸인 경혜공주(敬惠公主)와 혼인을 하였다.
1464년(세조 10) 이보가 회암사에서 원각법회를 베풀자 여러 상서로운 일이 일어났으므로 세조가 흥복사(興福寺)를 세워서 원각사(圓覺寺)로 삼도록 명하였다. 1465년『반야바라밀다 심경(般若波羅蜜多心經)』을 언해(諺解)하였고, 세조에게 『원각경(圓覺經)』 수교(讐校)를 바쳤다. 1466년(세조 12) 3월 표훈사(表訓寺)에서 수륙회를 베풀고 사리(舍利)를 바쳤다. 그해 5월 세조가 흥복사에 거동하여 원각사 창건을 의논하였는데, 효령대군에게 조성도감(造成都監) 도제조(都提調)를 맡겼다.
묘소와 영정
시호는 정효(靖孝)이다. 묘소는 『선원계보(璿源系譜)』에는 경기도 과천 임산원(壬山原)에 있는데, 현재 서울시 서초구 방배동이다. 관악산 최고봉인 연주봉 위에 연주대(戀主帶)에 효령각(孝寧閣)을 세워서 효령대군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 연주대는 경기도 기념물 제20호이고, 효령각의 영정은 경기도 문화재 경기도 문화재 제81호이다. 1736년(영조 12) 묘소 아래에 청권사(淸權祠)가 건립되고, 1789년(정조 13) 사액(賜額)되었다. 1865년(고종 2) 효령대군은 양녕대군과 함께 세종의 묘정(廟廷)에 추가로 배향되었다.
부인 예성부부인(蘂城府夫人)해주 정씨는 의정부 좌찬성정역의 딸인데, 자녀는 6남 1녀를 두었다. 장남은 의성군(誼成君)이채(李寀)이고, 차남은 서원군(瑞原君)이친(李*)이고, 3남은 보성군(寶城君)이합(李㝓)이고, 4남은 낙안군(樂安君)이녕(李寧)이고, 5남은 영천군(永川君)이정(李定)이고, 6남은 원천군(原川君)이의(李宜)이다. 1녀는 이훈(李塤)의 처이다. 서출은 1남 1녀인데, 서출 1자는 안강정(安康正) 이양(李㝗)이고, 서출 1녀는 전진형(全晉享)의 처이다.
참고문헌
- 『태종실록(太宗實錄)』
- 『세종실록(世宗實錄)』
- 『문종실록(文宗實錄)』
- 『단종실록(端宗實錄)』
- 『세조실록(世祖實錄)』
- 『예종실록(睿宗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 『중종실록(中宗實錄)』
- 『인조실록(仁祖實錄)』
- 『선조실록(宣祖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국조보감(國朝寶鑑)』
- 『일성록(日省錄)』
-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紀略)』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