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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45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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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피전 |
한글표제 | 피전 |
한자표제 | 避殿 |
동의어 | 피정전(避正殿) |
관련어 | 감선(減膳), 거둥(擧動), 사면(赦免), 수성(修省), 철악(徹樂), 행궁(行宮), 행행(行幸) |
분야 | 왕실/왕실건축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이강민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피전(避殿)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성종실록』 1년 6월 2일 |
나라에 천재지변 등이 있을 때 왕이 근신하는 차원에서 정전(正殿)을 떠나 머물던 일.
개설
피전은 정전을 피한다는 뜻으로, 왕이 궁전을 떠나 행궁(行宮)이나 별서(別墅)에 옮겨 거처하던 일을 뜻한다. 그러나 왕이 궁을 옮기기 위해서는 많은 경비와 노력이 들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특정 전각 내에서 왕이 거처하는 위치를 옮기는 방식으로 변화하였다.
내용 및 특징
나라에 천재지변 등의 재난이 생기면 왕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여러 가지 상징적인 행위를 거행했다. 죄수들의 형량을 줄이거나 없애 주는 사면(赦免), 근신하는 뜻으로 수라상의 음식 가짓수를 줄이는 감선(減膳), 마음을 가다듬어 반성하는 수성(修省), 음악을 철폐하는 철악(徹樂), 그리고 정전을 떠나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피전 등이 대표적인 행위이다(『성종실록』 1년 6월 2일).
피전이 일어나는 가장 일반적인 경우는 자연재해나 질병, 혹은 궁궐 내에 불길한 현상이 있을 때였다. 이는 위정자가 정치를 잘하면 그 영향으로 우순풍조(雨順風調), 즉 비가 때맞추어 알맞게 내리고 바람이 고르게 불어 나라가 태평을 누리게 되지만, 반대일 경우에는 그 영향으로 천변이나 지변이 발생한다는 천인일체(天人一體) 사상에서 유래한 것이다. 즉, 정전을 피하는 행위는 단순히 재해를 피하거나 책임 소재를 밝히려는 의도라기보다는 하늘과 인간이 만나는 장소인 정전에서 왕이 벗어나 근신함으로써 하늘의 노여움을 풀고 민심을 회복하려는 상징적인 행위였던 것이다.
변천
피전 제도는 중국과 고려에서도 행해지던 보편적인 의식이었다. 초기의 피전이 행궁이나 별서로 이어하는 방식이었다면, 후대로 오면서 점차 궁궐 내에서 행해지는 의식으로 바뀌었다. 세종대까지는 피전을 할 때 본궁(本宮)과 이궁(離宮)을 피방(避方)하는 방식을 택했지만, 왕이 궁을 옮기는 문제는 사실상 많은 경비와 노력을 요구했다. 때문에 점차 피전의 방식은 정전의 바깥쪽 행랑이나 정전의 처마 밑으로 한정되었다.
정전인 경복궁 근정전(勤政殿)에서 피전의 위치는 첨하(檐下), 즉 처마 아래에서 이루어졌다. 경복궁의 편전(便殿)인 사정전(思政殿) 역시 처마 아래에서 이루어졌다.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仁政殿)의 경우 첨하 및 월대(月臺)에서 피전이 이루어졌으며, 창덕궁의 편전인 선정전(宣政殿)은 전랑(前廊) 및 처마 아래에서 이루어졌다.
참고문헌
- 윤정현, 「조선시대 궁궐 중심공간의 구조와 변화」,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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