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전(便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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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일상적 집무 공간.

개설

상참과 조계 같은 매일의 소규모 조의를 비롯하여 조강, 주강, 석강의 학문적 활동, 경연과 소대 등 왕의 일과가 대부분 편전에서 이루어졌다. 궁궐에서 가장 공식적이고 위계가 높은 건물은 정전이지만, 왕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은 편전이다.

편전은 궁궐의 중심에서 내외를 가르는 경계가 된다. 조하례, 조참례 등 의례에 있어서 왕의 움직임이 출발하는 곳이자 행사를 마치고 최종적으로 돌아오는 곳이 바로 편전이다. 사관이 입시하여 왕의 언행을 기록하는 것도 편전까지로 개념화 되어 있었다. 즉, 왕의 일상은 공간적으로 편전에서의 의식, 침전에서의 휴식으로 구분되어 있다.

편전의 기능 중 특별한 점은 국상으로 인해 빈전과 혼전을 마련할 때, 별도의 전각을 짓거나 상례를 위한 전각이 미리 마련되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보통은 편전을 빈전·혼전으로 사용하는 일이 많았다는 점이다. 이 경우 3년상을 치르는 동안 편전을 원래의 기능으로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편전의 기능은 다른 전각으로 이전되는 일이 종종 발생하였다. 『궁궐지(宮闕志)』에서 선정전을 옛 편전으로, 희정당(熙政堂)을 지금의 편전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국상 거행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동궐도(東闕圖)」, 「동궐도형(東闕圖形)」에 나타나는 선정전·문정전·자정전의 전면 복도각도 이러한 기능과 관련되는 특징으로 볼 수 있다.

내용 및 특징

조선 사대부들은 편전이 고전에 등장하는 노침(路寢)에 해당한다고 이해하였다(『단종실록』 3년 4월 17일). 노침은 왕과 신하가 만나는 공적인 공간 및 왕의 내전 영역에 속한 사적 공간의 매개체였다. 조선 궁궐에서도 편전은 내전 영역에 속해 있지만 왕이 공식적인 업무를 하는 공간으로 기능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노침으로서의 편전은 조회에서 물러나와 정사를 보는 공적인 공간으로 해석되는 동시에, 사용자인 왕의 입장에서는 사적인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예를 들어, 경복궁 창건시기 편전이었던 보평청(報平廳)은 왕실 구성원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연침(燕寢)의 역할을 했던 강녕전(康寧殿)과 함께 내전(內殿)에 속하여 사적인 성격을 반영하였다.

편전 공간의 모호성은 몇 가지 논란을 야기했다. 예를 들어, 조선왕실에서 왕이 공식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모든 공간에 사관(史官)은 왕과 함께 있어 왕의 활동을 기록해야 했다. 그러나 편전에 사관이 함께 입장을 해야 하는 것인지 혹은 왕의 사적인 영역이므로 입장을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인지를 두고 논쟁이 있었다. 성종대에 가서야 편전에 사관을 대동하게 되면서 편전의 공적인 성격이 강조되는 방향으로 정리되었다(『성종실록』 11년 2월 30일).

변천

경복궁의 보평청은 조선 궁궐 최초의 편전이라 할 수 있다. 고려시대 장화전(長和殿)의 구성을 이어받아 전면 총 5칸 규모의 전각이 중앙의 3칸과 좌우의 이방(耳房) 각 1칸으로 구성되었다. 보평청에서의 의례 규정을 분석해 보면, 건물 내부에는 의례 설행의 중요한 기준이 되는 두 개의 원기둥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창덕궁의 보평청은 전면 3칸으로 구성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1418년(태종 18)에 편전으로 영건된 조계청(朝啓廳) 또한 협소한 규모였다. 조계청은 나중에 선정전(宣政殿)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선정전이 기록된 가장 빠른 시기는 1670년(현종 11)으로서 「시민당도(時敏堂圖)」에 수록되어 있다. 이 그림에서 선정전은 정면 3칸으로 묘사되어 있다. 창경궁의 문정전(文政殿)은 성종대에 영건되었다가 임진왜란으로 불탄 이후 광해군 때 재건되어 일제시기까지 존속하였다. 그러나 현재 건물은 1986년에 재건된 것이다. 평면 구성의 측면에서는 광해군대의 모습을 대체로 유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선정전과 비슷한 모습이다.

선정전과 문정전의 평면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내부 기둥열의 배치이다. 두 전각 모두 실내에 기둥을 두 개만 남겼다. 이 두 기둥은 양영(兩楹) 혹은 전영(前楹)이라 하여, 행례 시 신하들의 위치 기준이 되는 지표이다. 고종대에 중건된 경복궁의 사정전(思政殿)은 정면 5칸의 건물로 확장되었지만, 전영을 구비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른 편전들과 형식적으로 동일한 평면을 취하고 있다.

경덕궁(慶德宮)덕홍전(德弘殿)은 명성황후(明成皇后)의 혼전(魂殿)으로 사용된 경효전 자리에 1911년 새로 지은 편전이다. 덕홍전과 경효전은 대체로 비슷한 건축 구성을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1906년(광무 10)에 간행된 『경운궁중건도감의궤(慶運宮重建都監儀軌)』에 실린 경효전 관련 기사를 분석하면, 경효전에도 사정전과 같이 건물 내부에 4개의 기둥이 있었다. 그런데 뒷줄의 기둥은 어좌의 후벽으로 쓰이고, 앞줄의 기둥은 전영으로 쓰이는 방식을 계승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편전의 평면에는 의례적 성격에 직접 대응한 선정전·문정전(文政殿)·자정전(資政殿) 등의 기본 형식이 있다. 그리고 기본 형식을 확장하면서 구조의 합리화를 꾀한 고종대의 사정전·덕홍전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정면 3칸의 규모와 전영 등 기본적 구성 요소를 공유해서 편전 형식의 전형성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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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김동욱, 「조선시대 창덕궁 희정당의 편전 전용에 대하여」, 『건축역사연구』제3권 제1호, 1994.
  • 윤정현, 「조선시대 궁궐 중심공간의 구조와 변화」,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0.
  • 정기철, 「17세기 사림의 ‘묘침제’ 인식과 서원 영건」,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9.
  • 조재모, 「조선시대 궁궐의 편전 건축형식」, 『건축역사연구』36, 2003.
  • 조재모, 『조선시대 궁궐의 의례운영과 건축형식」,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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