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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41 기준 최신판



관인을 현직에서 파면하는 동시에 품계를 내리는 인사제도.

개설

파출과 유사한 용어로는 파개(罷改)·파삭(罷削)·파산(罷散) 등이 있는데 현재로서는 각각의 명확한 의미 차이를 알 수 없다. 파출은 현직에서 파직됨과 동시에 품계(官品) 역시 내리는 것을 의미하는데, 고과(考課)와 관련되거나 혹은 관원의 직무와 관련된 사례들이 많았다. 조선후기에는 특히 조세 징수와 관련된 파출 내용 다수가 법전에 규정되어 주목되었다.

내용 및 특징

파출이란 관원을 현재의 관직에서 파직시킴과 동시에 가지고 있던 품계도 내리는 경우를 말하였다. 이와 관련되어 몇 가지 규정이 있었다. 먼저는 고과와 관련된 『경국대전』의 규정이 있었다. 포폄에서 10번 모두 ‘상(上)’을 받은 관원은 상(賞)으로 1계(階)를 올려 주는데, 이때 만약 정3품 당하관의 품계를 가지고 있는 관원이라면 품계는 올리지 않고 관직을 올려 주었다. 또한 10번 고과에서 2번의 ‘중(中)’을 받으면 녹봉을 받지 않는 무록관(無祿官)에 임용하고, 3번 ‘중’을 받으면 파직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5번의 고과나 3번 고과, 2번의 고과에서 1번이라도 ‘중’을 받은 자는 현직(現職)보다 높은 직을 받을 수 없었으며, 2번 ‘중’을 받은 자는 파직되었다. 또한 당상관인 수령은 한 번이라도 ‘중’을 받으면 파직시키도록 규정되었다.

만약 5차례 고과하여 그중 1번이라도 하(下)의 점수가 있으면 파출되었다(『세종실록』 5년 6월 5일). 문신의 경우에도 5차례 고과하여 4번 ‘중’을 받은 경우 역시 파출되었다(『세종실록』 7년 7월 13일). 『경국대전』에서는 또한 입직(入直)을 빠뜨린 자는 파출하도록 하였고, 녹사(錄事)서리(書吏)의 경우 이유가 있는 사고로 임기 만기일 중 100일을 채우지 못하거나 무단으로 임기 만기일 중 30일을 채우지 못하면 역시 파출하도록 규정하였다. 그런데 만약 이들이 본래의 관서로 복귀하고자 한다면 들어주도록 하였다.

이 밖에도 『경국대전』에서는 조세 징수와 관련되어 몇 가지 파출 규정을 수록하였다. 연말에 농민은 재해로 입은 피해 정도를 보고하는데, 이때 농민이 허위로 보고하면 그 책임을 물어 수령을 파출하였고, 농민이 납부해야 하는 공물이 6개 이상 관서에 미납된 경우에도 역시 수령을 파출하도록 규정하였다.

변천

조선후기에 이르러서도 각 법전에 역시 파출과 관련된 여러 조항이 규정되었다. 특히 조세와 관련되어 여러 조항이 규정되어 주목되었다. 먼저 영조대 간행된 『속대전』에서는 수령으로서 가족을 인솔하고 부임하되 그 인원이 지나치게 많거나 수령으로서 읍비(邑婢)를 잠간(潛奸)한 자는 파출하도록 하였다. 또한 호적(戶籍)을 기한 내에 납부하지 않으면 관찰사는 추고(推考)를 당하였고 수령은 파출되었다. 보고된 호적 가운데(중) 5호(戶) 이상 허위로 보고되었거나 5명 이상의 인원이 허위로 기재되었으면 역시 파출되었다. 국용 물건 이외에는 무역이 금지되었는데 만약 각사(各司)에서 사사로이 무역을 하다가 발각되면 해당 관원은 물론이고 평시서 관원도 함께 파출되었다. 내수사(內需司) 관원과 함께 작폐(作弊)를 저지른 수령 또한 파출 대상이었다. 어염선세(魚鹽船稅)를 기한 내에 납부하지 않은 수령도 파출되었다.

이후 정조대 간행된 『대전통편』에서도 파출과 관련된 조항이 추가되었다. 특히 조운(漕運)과 관련된 조항이 눈에 띄는데, 조운선이 풍랑을 만나면 수령은 즉시 보고해야 하는데 이를 즉시 보고하지 않은 경우 파출되었다. 조운선의 호송에 마음을 다하지 않아 선박이 난파된 경우, 변장(邊將)이 다스리는 지역은 변장이, 변장이 없는 지역은 해당 지역의 지방관이 역시 파출되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속대전(續大典)』
  • 『대전통편(大典通編)』
  • 『대전회통(大典會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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