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건도감(重建都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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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대 진전(眞殿)경운궁(慶運宮) 등의 중건을 담당한 임시 관청.

개설

‘중건’은 건축물의 수리나 보수, 재건 등과 관련하여 매우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단어였다. 그러나 ‘중건도감’이라는 명칭이 사용된 경우는 드물다. 도감보다 격이 낮은 ‘중건청(重建廳)’은 왕릉이나 종묘, 궁궐 등의 보수를 위해 자주 설치되었다. 그러나 중건도감의 경우는 정조대 시민당(時敏堂)을 중건하려고 잠시 설치했다가 중단한 사례만 확인될 뿐, 실제 관청의 명칭으로서 중건도감이 사용되고 설치된 사례는 고종대에서만 발견된다.

중건도감은 고종대 선원전(璿源殿) 화재 후 진전을 중건할 때, 경운궁 화재 후 이를 보수할 때 설치되었던 임시 관청이다. 선원전은 조선시대 진전의 하나로서, 진전은 왕의 초상화를 모셔 놓고 제례를 드리던 건물이다. 공역의 성격에 따라 담당 관원의 직급은 도제조(都提調), 제조(提調) 등으로 달랐으며, 관원의 수 등도 일정하지 않았다.

설립 경위 및 목적

1900년(광무 4) 10월 14일 경운궁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신축한 선원전이 소실되었다. 이에 바로 당일 영정모사도감(影幀摹寫都監)과 진전중건도감(眞殿重建都監)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실제 중건 공사는 이듬해 경칩 이후부터 이루어져 1901년 7월 공역이 완료되었다.

이후 1904년 4월 14일에는 경운궁의 함녕전(咸寧殿), 중화전(中和殿), 즉조당(卽阼堂), 석어당(昔御堂) 등의 전각이 소실되는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이에 바로 그다음 날인 4월 15일 경운궁중건도감(慶運宮重建都監)을 설치하고 소실된 전각들을 중건하여, 1906년 완료하였다.

왕릉 공역을 비롯한 여러 공역에서 중건청은 자주 설치되지만, 중건도감은 설치된 바가 없다. 그런데 이 두 가지 경우에 특별히 설치된 것은 그만큼 해당 공역의 중요성을 반영하는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이상의 중건 공역은 각각 『진전중건도감의궤(眞殿重建都監儀軌)』와 『경운궁중건도감의궤(慶運宮重建都監儀軌)』에 상세한 기록이 남아 있다.

조직 및 역할

도감은 대체로 도제조, 제조 등 당상(堂上)과 낭청(郎廳), 기타 서리(書吏) 등으로 구성된다. 진전중건도감은 특진관(特進官)심순택(沈舜澤)을 도제조에 임용하고 원수부(元帥府) 회계국(會計局) 총장(總長)민영환(閔泳煥), 궁내부(宮內府) 특진관 김석진(金奭鎭), 정2품 조희일(趙熙一)을 제조에 임용하였다가 심순택 대신 윤용선(尹容善)을 임용하였다. 이상의 인물들은 영정모사도감의 도제조와 제조도 함께 맡았다.

경운궁중건도감의 경우에는, 특진관윤용선(尹容善)을 도제조로, 탁지부(度支部) 대신(大臣)박정양(朴定陽)·궁내부(宮內府) 대신 민병석(閔丙奭)을 제조로 삼았다. 이 외에 낭청으로 신성수(申聖秀) 등 7명을, 별간역(別看役)으로 김희석(金禧錫) 등 8명을 임명하였고 도패장(都牌將)이 60여 명 참여하였다.

변천

진전중건도감은 공역을 마친 1901년에, 경운궁중건도감은 1906년에 해체되었다.

참고문헌

  • 서울대학교 규장각 편, 『규장각 한국본 도서 해제』, 서울대학교 규장각, 1994~2004.
  • 서울대학교 도서관 편, 『규장각 한국본 도서 해제』, 서울대학교 도서관, 1978~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