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향(坐向)
주요 정보 | |
---|---|
대표표제 | 좌향 |
한글표제 | 좌향 |
한자표제 | 坐向 |
하위어 | 좌(坐), 향(向) |
동의어 | 산향(山向) |
관련어 | 이기파(理氣派), 입향(立向), 입향수수(立向受水), 향법(向法) |
분야 | 생활·풍속/풍수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김혜정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좌향(坐向)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종실록』 27년 4월 4일, 『중종실록』 25년 9월 17일, 『선조실록』 32년 7월 14일, 『선조실록』 33년 8월 29일, 『선조실록』 33년 9월 4일, 『선조실록』 33년 11월 9일, 『선조실록』 33년 11월 11일, 『광해군일기』 8년 2월 18일, 『광해군일기』 9년 6월 28일, 『광해군일기』 9년 11월 17일 |
묘나 집터의 앞뒤 방향을 표시하는 것으로 뒤쪽을 좌(坐)라 하고, 바라보는 앞쪽을 향(向)이라 함.
개설
좌향은 등을 대고 앉아 있으면서 바라보는 곳이 향, 등을 대고 있는 쪽이 좌로서 서로 대응 방향이 된다. 단순한 위치나 방향 표시가 목적이 아니라 좌향에 따라 그 터의 길흉화복을 논하기 때문에 풍수지리에서 좌향은 매우 중시된다. 좌향론을 중시하는 풍수지리 유파를 이기파(理氣派)라고 한다.
내용 및 특징
세종의 수릉(壽陵)을 보기 위해 논의된 자리가 헌릉(獻陵)인데, 당시 의정부 우의정하연(河演)과 예조 판서김종서(金宗瑞), 우참찬정인지(鄭麟趾) 등은 당시 통용되던 여러 지리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헌릉 옆에 수릉을 조성해도 무방하다는 상소를 올린다. 대개 그 내용은 이미 헌릉이 조성되어 있다지만, 수릉을 조성할 자리의 맥도 길지로서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그들이 수릉을 조성할 자리의 여러 산봉우리와 물의 오고가는 방위를 측량하고 그 거리도 잰 다음 내린 결론이었다. 방위를 측정한 결과, 즉 산수의 좌향을 꼼꼼히 따져본 결과 그것이 바르므로 수릉의 자리는 길격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세종실록』 27년 4월 4일).
좌향도 바르니 수릉을 조성할 수 있다는 설명에서 보듯이, 좌향은 풍수지리에서 능묘 조성의 중요 요건 가운데 하나이다. 좌향은 산수가 놓인 방향 또는 방위를 재는 것인데, 단순한 방위상의 구도가 아니라 그 이면에는 길흉에 따른 방위가 따로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좌향을 바르게 재기 위해 거듭 그 자리에 가서 재차 삼차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기도 한다.
중종 때 총호사심정(沈貞)이 좌향을 다시 재차 확인하고 그 결과를 자세히 보고한 것이나, 선조 때 박상의(朴尙義)가 해좌사향을 거론하면서 안산(案山)과 국세, 수구(水口)를 언급한 것도 수구에 따라 길흉이 달라진다고 보기 때문이다(『중종실록』 25년 9월 17일)(『선조실록』 32년 7월 14일). 또 선조대에 총호사 이헌국(李憲國)이 좌향과 수파만이 좋은 것이 아니고 청룡과 백호가 가지런히 조공하는 형세이므로 더욱 길지의 조건에 부합하다고 한 것이나, 정구(鄭逑)가 풍수지리가의 이론을 좌향과 형세로 말한 것, 그리고 영의정이항복(李恒福) 등이 건원릉(乾元陵)의 형세와 좌향을 살핀 것이나 풍수지리의 대강을 산의 형세, 좌향, 수파, 택일 등으로 언급한 것 또한 형세 못지않게 좌향도 중시되었던 면모를 말해 주고 있다(『선조실록』 33년 8월 29일)(『선조실록』 33년 9월 4일)(『선조실록』 33년 11월 9일)(『선조실록』 33년 11월 11일). 아울러 좌향은 음택뿐만 아니라 경복궁과 같은 양택에서도 적용되었음을 광해군대의 기사들은 전하고 있다(『광해군일기』 8년 2월 18일)(『광해군일기』 9년 6월 28일)(『광해군일기』 9년 11월 17일).
조선조 지관 선발 고시과목인 『청오경(靑烏經)』과『장서(葬書)』에서는 좌향에 대한 논의가 뚜렷하지는 않지만 언급되어 있다. 『청오경』에서는 향이 음양을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터럭만 한 좌향의 차이가 천 리만큼의 화복의 어긋남이 된다고 하거나, 제대로 된 방위를 갖추게 되면 공부하지 않고도 이루게 된다고 하였다.
『명산론(明山論)』과 『지리신법(地理新法)』에서는 좌향론이 풍수의 주요 개념으로 등장한다. 조선조 풍수학 4대 고시과목이었던 『명산론』 제6편은 좌향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명산론』에 따르면 향을 정함에 있어서 반드시 객산(客山)과 주산(主山)이 드러나야 하며, 객산과 주산이 없으면 혈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향을 정함에 있어서 흐르는 물은 반드시 굽이져야 하며, 흐르는 물이 제멋대로 달아나면, 발복(發福)이 생기지 않는다. 이것이 향 세우기[立向]의 개략이다. 반드시 내룡(來龍)의 오는 바를 살펴야 하고, 물의 흘러가는 바를 살펴야 하며, 산과 물의 앞면과 뒷면을 살펴야 하고, 기맥(氣脈)이 박환(剝換)되는 것을 살펴야 하고, 혈 주변을 감싸고 있는 산들을 살펴야 한다. 득수(得水)와 파구(破口)가 서로 적절한 관계를 이루게 해야 하며, 산과 함께 떠나가게 하거나, 물과 함께 달아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연후에야 향을 제대로 세울 수 있다. 이것이 『명산론』의 좌향론 대강이다.
변천
좌향은 초기 풍수 고전들에서는 용(龍), 혈(穴), 사(砂), 수(水)에 비해 그리 중요하지 않게 다뤄지다가 송(宋)대 이후에, 특히 이기파 풍수에서 중요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이후 나경론의 술수화와 더불어 좌향론 역시 아주 복잡해져, 마침내는 풍수가 사술로 비난받게 되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미 이러한 문제는 송대에 성리학의 대가, 주자(朱子)와 정자(程子)가 지적하였다. 특히 이기파에 의한 좌향론은 수법(水法)과 결부되어 복잡해진다.
『양택십서(陽宅十書)』에 의하면 양공구성수법(楊公九星水法), 음양산수법(陰陽山水法), 사로수법(四路水法) 등과 같은 수법이 있고, 『지리신법』의 포태수법 이외에 『지리오결』의 구궁수법, 삼합법(三合法), 진신과 퇴신의 수법 등이 있다. 조선시대가 『지리신법』의 수법론을 위주로 했다면, 현재는 『지리오결(地理五訣)』의 좌향론을 많이 쓰는데, 중국에서는 산향(山向)이라는 용어를 많이 쓴다.
이들의 이론적 합리성을 논증하기는 어렵지만, 조선시대 유명한 길지들은 대체로 향법을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기존 풍수 서적들의 유실과 명나라 군대를 따라 조선에 입국한 중국인 풍수사들의 새로운 풍수설이 섞이면서 좌향론은 혼란을 겪기도 했다.
참고문헌
- 『산릉의장(山陵議狀)』
- 『양택십서(陽宅十書)』
- 『장설(葬說)』
- 『지리오결(地理五訣)』
- 김두규, 『풍수학 사전』, 비봉출판사, 2005.
- 양균송 저·김두규 교감역주, 『감룡경·의룡경』, 비봉출판사, 2009.
- 조정동 저·신평 역주, 『지리오결』, 동학사, 1993.
- 채성우 저·김두규 역해, 『명산론』, 비봉출판사 2002.
- 최창조 역주, 『청오경·금낭경』, 민음사, 1993.
- 호순신 저·김두규 역해, 『지리신법』, 비봉출판사, 2004.
- 徐善繼·徐善述, 『地理人子須知』, 臺灣, 竹林書局, 2007.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