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배(展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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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국왕이 능침이나 종묘 또는 왕실의 사당 등을 배알하면서 무릎을 꿇고서 절하는 의식.

개설

전배란 국왕이 능침이나 왕실 관련 사당 등을 찾아가 절하는 의식을 말한다. 정기적으로 행하는 경우와 비정기적으로 행해지는 전배가 있었는데, 그 형식은 대체로 동일하였다. 조선후기로 갈수록 전배의 대상은 점차 확대되었다.

내용 및 특징

전배의 대상은 다양하여, 정기적인 전배는 왕릉이나 종묘, 왕실의 사당 등에 행하는 경우이고, 비정기적인 전배는 성균관의 문묘나 각종 사당 등에서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선조의 사친인 덕흥대원군 사당의 경우는 국왕의 특별한 명령으로 이루어졌고(『숙종실록』 21년 2월 14일), 왕세자의 가례 뒤에 영소전(永昭殿) 등에 대해서도 전배가 진행되었다(『숙종실록』 22년 9월 3일).

전배의 형식은 대체로 유사하였다. 『홀기진설도(笏記陳設圖)』에 수록된 「원전배홀기(園展拜笏記)」에 따르면, 종친과 국왕을 수행한 관원들이 먼저 정해진 자리에 나아간 뒤, 예를 집행하는 관원 중 한 명인 전사(典祀)가 국왕과 왕비 등을 인도하여 정해진 자리로 나아간 뒤 국왕과 왕비가 북향을 하여 선다. 전사가 국왕께 재배(再拜)를 청하면 찬자(贊者)가 ‘재배’라 창하며, 국왕과 왕비가 국궁(鞠躬)·재배·흥(興)·평신(平身)의 순서로 절을 한다. 이어서 종친과 수행 관원이 국궁·재배·흥·평신 순서로 절을 한 뒤 전사가 다시 국왕과 왕비를 인도해서 능원(陵園)의 위로 올라가 능을 살피는 봉심(奉審)을 행한 뒤 재실(齋室)로 들어간다. 그러면 종친과 수행 관원은 밖으로 나가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변천

『은대편고(銀臺便攷)』에는 국왕의 전배례와 관련해서 몇 가지 경우가 규정되었다. 먼저 종묘나 사도세자의 사당인 경모궁(景慕宮)의 경우는 매년 정월과 봄·가을로 예조에서 국왕에게 보고한 뒤 택일해서 전배례를 행하고, 영조의 생모인 숙빈최씨(淑嬪崔氏)의 사당인 육상궁(毓祥宮)은 매년 3월에 행하며, 선희궁(宣禧宮)과 의소묘(懿昭廟)·문희묘(文禧廟)는 매년 9월에 시행하며, 경우궁이나 덕흥대원군 사당은 국왕의 특별 명령에 따라 시기를 정하여 전배례를 행하도록 하였다. 사당에 대한 전배례는 대개 사당에 모셔진 인물의 기일에 행해졌다. 이 밖에 다른 능원묘는 매년 2월과 8월에 전배례를 행하도록 규정하였다.

이 밖에도 조선후기에는 여러 공간에 대해서 전배례가 시행되었다. 영조대에는 역대 선왕의 어진을 봉안하고 있는 선원전(璿源殿)(『영조실록』 12년 7월 15일)을 비롯해 기로소에 있는 영수각(靈壽閣)(『영조실록』 28년 1월 2일), 명나라태조와 신종·의종을 제향하는 대보단(大報壇)(『영조실록』 35년 5월 1일), 인조의 잠저(潛邸)에 설치된 봉안각(奉安閣)(『영조실록』 45년 10월 21일) 등에 전배례를 시행하였다.

정조대에는 사도세자의 묘인 영우원(永祐園)과 함께 역대 선왕의 글을 보관하는 봉모당(奉謨堂)에 대해 전배례를 시행하였다. 봉모당에 대해서는 매년 1월과 7월에 국왕이 왕세자가 함께 길일을 가려서 전배하고, 매달 보름 전과 보름 후에 규장각 각신(閣臣) 2명이 봉심하는 규정을 제정하기도 하였다(『정조실록』 5년 2월 13일). 이 밖에도 『의주등록(儀註謄錄)』에 나타난 경우만 보더라도, 철종의 양친인 전계대원군(全溪大院君)과 용성부부인(龍城府夫人)의 사우(祠宇)를 비롯해, 관우의 혼령을 모시는 관왕묘(關王廟) 등도 전배례의 대상이 되었다.

참고문헌

  • 『은대편고(銀臺便攷)』
  • 『의주등록(儀註謄錄)』
  • 『홀기진설도(笏記陳設圖)』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