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마위전(人馬位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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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마를 사육하고 유지·운용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을 조달하기 위하여 설정한 전지.

내용

1. 설치 및 정비

인마위전은 마전(馬田)·마위전(馬位田)·마분전(馬分田)이라고도 불렀는데, 역리(驛吏)는 마전을 절급받아 말들을 구입·사육·관리하는 한편, 공무에 사용하였다. 그런데 고려전기에는 역에 마위전이 따로 절급되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없고, 일반 군현과 마찬가지로 공수전(公須田)·지전(紙田)·장전(長田)이 절급되었다. 그러다가 고려후기로 접어들면서 역참제도가 발달하였던 원(元)의 영향으로 마전이 설정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 뒤 고려말 전제개혁(田制改革) 때 역로(驛路)의 중요도와 역 소속 유역인(有役人) 및 역마(驛馬)의 숫자에 따라 대·중·소의 3등급으로 구분하여 역전(驛田)을 공수전·마위전·역 소속 유역인들의 구분전(口分田)으로 구분하여 차등 있게 절급하였다. 이때 마련된 마위전 절급 규정이 조선시대의 마위전 규정으로 자리 잡았다.

2. 절급 대상과 절급 면적

마위전의 절급 대상자는 원칙적으로 역리였다. 그렇지만 역리의 사망이나 유망 등으로 입마(立馬) 대상자가 부족할 경우 역리·역녀(驛女)와 공천(公賤) 사이의 소생, 역 근처에 거주하는 사람들 가운데 차출된 조역 평민(助役平民), 도망한 역리의 마위전을 오랫동안 경작한 사람 등을 입마 대상자로 정하여 마위전을 절급하기도 하였다.

마위전의 절급 액수는 원래 상등마의 경우 1필당 9결(結), 중등마 7결, 하등마 5결을 각각 절급하였다. 그러다가 『경국대전』이 편찬되는 과정에서 상등마 7결, 중등마 5결 50부(負), 하등마 4결로 각각 축소되었다. 그렇지만 역로의 등급에 따라 역마의 수를 규정하였을 뿐, 구체적으로 역마의 수를 규정한 기록을 찾아볼 수 없었다. 따라서 각 역에 절급된 마위전을 절급 면적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다.

한편, 조선초기의 각 역에는 마위전 말고도 협마위전(挾馬位田)이 절급되기도 하였다. 협마는 규정에 따라 배정된 역마를 보조해 주는 말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규정에 따라 배정된 역마들만으로 역의 업무를 수행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관행으로 협마위전을 절급하여 협마를 준비함으로써 역의 업무를 조금 더 원활하게 수행하고자 하였다. 그러다가 『경국대전』을 편찬하는 과정에서 국가는 협마위전을 혁파하고 역마 1 필당 마위전의 절급 면적을 줄이는 대신에 이전보다 더 많은 역마들을 배정한 것으로 보인다.

3. 소유와 경작

마위전은 원칙적으로 역 소속 유역인들의 소경전(所耕田), 즉 민전(民田) 위에 설정된 수세지(收稅地)로 입마자(立馬者)가 수세권(收稅權)을 행사하였다. 그리고 입마자가 직접 경작하는 것[親耕, 自耕]이 원칙이었으나,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국가는 마위전을 자경무세(自耕無稅)의 공전(公田)으로 전환시켜 관리를 강화하여 보다 안정적인 역 운영 체제를 유지하고자 하였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삼봉집(三峰集)』
  • 『경국대전(經國大典)』
  • 김옥근, 「조선시대 역전논고」, 『경제사학』 1, 1980.
  • 이경식, 「조선전기 역전의 경영 변동」, 『변태섭박사화갑기념 사학논총』, 삼영사, 1985.
  • 이장우, 「조선초기의 역전」, 『역사학보』 142, 1994.
  • 有井智德, 「李朝初期における公的土地所有としての公田」, 『조선학보』 74,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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