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移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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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청 상호 간에 동등하거나 그에 상응하는 기관 사이에 왕래하는 공문서, 또는 공문서를 보내는 행위.

개설

관청 사이에는 공문이 오고 가는데, 관청 상호 간의 관계에 따라 쓰이는 문서의 종류가 달랐다. 상급 기관에서 하급 기관으로 보내는 문서, 동등 기관 사이에 오가는 문서, 하급 기관이 상급 기관에 보내는 문서가 있게 마련인데, 각 기관 사이에는 갖추어야 할 서식들이 있었다. 상호 간의 등급을 반영하여 문투와 압, 도장 등을 어떤 형식으로 사용할 것인가가 결정되었다. 이문(移文)은 관청 상호 간에 동등하거나 그에 상응하는 기관에 보내는 문서이다.

내용 및 특징

관청 사이에 오가는 문서의 전형적인 형태는 상급 기관이 하급 기관에게 보내는 관자(關子),등급이 같은 기관에 보내는 이문, 하급 기관이 상급 기관에 올려 보내는 첩정(牒呈)이 있으며, 각각의 문서들은 사용하여야 할 서식들이 있었다.

고려시대에 원이 고려에 보낸 공문에서는 원과의 관계 때문에 이와 같은 서식은 지켜지지 않았다. 중서성은 고려 국왕에게 첩정을 보낸 반면, 정동행성은 고려 국왕에게 관자를 보냈다. 고려가 부마국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정동행성이 문서를 보낸 것은 자(咨)·관자·차부(箚付)가 사용될 수도 있었으나, 중서성이 고려 국왕에게 보낸 것이 첩정이라는 점에서 등급에 따른 문서의 사용 형태가 각각 달랐다. 관청 사이에 문서를 보내면서 등급에 따라 문서를 보내는 격식이 없었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공문을 주고받는 격식에 대한 규정들을 더욱 엄격하게 적용하려 하였다. 1404년(태종 4)에 관청 간에 공문을 주고받는 규례가 다시 정해졌다. 아문과 사신(使臣)이 다른 관청에 공문을 보낼 때 사용하는 문서들을 구분하도록 하여, 동등한 아문에 보낼 때에는 평관(平關), 등급이 낮은 기관이 한 등 이상 높은 아문에 보낼 때에는 첩정, 각 아문이 한 등 이상 낮은 아문에 보낼 때에는 차부를 사용하도록 하였다(『태종실록』 4년 4월 6일). 따라서 육조나 관찰사 사이에는 동등한 아문에 보내는 예가 적용되었다.

그러나 일의 사안에 따라 달리 적용된 적도 있다. 태종대 병조를 중심으로 평관의 사용과 관련하여 삼군도총제부가 병조에 문서를 보낼 때에는 첩정을 사용하되, 여러 다른 조(曹)에는 평관을 사용하게 하여 일의 중요도에 따라 종류가 달랐다.

외임(外任)으로 나간 2품 이상에게 보내는 서식 또한 도관찰사와 도순문사가 병마도절제사를 겸하였다면 병조에 보낼 때 사용하는 문서가 달라서, 민사(民事)에 관계된 것은 평관을 사용하고 군사(軍事)에 관계된 것은 첩정으로 하되, 도관찰사와 도순문사가 군직을 갖지 않은 경우에는 군사와 민사이더라도 모두 평관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경국대전』의 규정에는 죄과가 있는 3품 이하의 관원과 무록관(無祿官)의 죄를 처리할 때 이조에서 의정부·사헌부·사관원에 이문하도록 하고 있어서, 때로는 이문의 개념이 상응하는 기관에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하급 관청에 공문을 보내는 것을 의미하는 경우도 있다. 세종대에는 하관(下官)이 상사에게 보고하는 글은 정자로 썼으나, 동등한 관아에 보내는 평관이나 하급 기관에 보낸 하첩(下帖)은 행서와 초서로 써서 보내던 것을 정서로 보내도록 하였으며, 종부시는 의금부의 예를 따라 각 조와 경중의 2품 아문에게 이문할 때에는 낭청이 문서를 올리도록 하고, 3품 이하의 아문에게는 보통 공문으로 통지하게 하였으며, 외방에 보내는 공문은 제조가 인(印)을 찍어서 보내도록 하였다.

의의

관청 공문을 주고받는 것을 통하여 관청 간의 등급에 따른 격식을 찾아볼 수 있으며, 그에 따라 사용되었던 문서의 형태를 살필 수 있다. 또한 중국의 이문의 개념과 조선의 이문의 개념이 적용되는 것을 살필 수 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낙하생집(洛下生集)』
  • 『원행을묘정리의궤(園行乙卯整理儀軌)』
  • 『임하필기(林下筆記)』
  • 이현구 역, 『(국역) 홍무예제』, 한국고전번역원,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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