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부(箚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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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아문이 한 등급 이하 아래 아문에 대하여 사용하는 공문.

개설

차부(箚付)는 원과 고려, 조선과 명, 조선과 여진·왜 사이에 작성된 문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급 아문이 상급 아문에 자문(咨文)을 보냈을 때, 그에 대하여 상급 아문이 응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1404년(태종 4) 각 품의 관리 상호 간에 인사를 나누는 예와 관청 간에 공문을 주고받는 규례를 다시 정하였는데, 아문과 사신 간에 공문을 보내면서 동등한 아문일 경우는 평관(平關)을 사용하고, 한 등 이상 높은 아문에 대해서는 첩정(牒呈), 한 등 이하 아래 아문에 대해서는 차부를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로써 차부는 격이 낮은 기관에 보내는 것임을 알 수 있다.(『태종실록』 4년 4월 6일)

내용 및 특징

1404년 각 품의 관리들이 공문을 주고받는 규식을 정하면서 차부는 각 아문이 한 등 이하 아래 아문에 대하여 사용하도록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을 수 있는 실례는 대부분 외교문서와 국내의 명령서에 준하여 사용한 사례로, 사대교린 관계에 이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즉 사대문서(事大文書) 가운데 아문에서 정부나 아문이 아닌 곳에 자문을 보냈을 때, 그에 회답하는 문서로 차부를 통용하도록 하였다.

『고려사』에 따르면 원 간섭기에 고려가 원에 보낸 자문에 대하여 원의 중서성에서 고려에 보내는 문서로 이용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명이 조선에 문서를 보낼 때 사용하였다. 조선이 여진 등 야인(野人)과 왜인에게 관직을 주거나 공문을 보낼 때에도 차부를 이용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요동의 자문과 차부는 의주에서 교할(交割)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때로 중국이 한성에서 교할하기를 주장하기도 하였다.

조선초기의 예제에 많이 참고했던 명의 『홍무예제』에는 서식이 자세하게 실려있다. 차부식(箚付式)을 보면 ‘모군도독부위모사(某軍都督府爲某事) 운운(云云) 합행앙조험(合行仰照驗) 운운(云云) 수지차부자(須至箚付者) 우차부모위지휘사사준차(右箚付某衛指揮使司准此) 홍무(洪武) 년(年) 인(印) 월(月) 일(日) 모사(某事) 차부(箚付) 좌도독(左都督) 압(押) 우도독(右都督) 압(押) 동지도독(同知都督) 압(押) 동지도독(同知都督) 압(押) 첨도독(僉都督) 압(押) 첨도독(僉都督) 압(押)’의 형식으로 되어있다.

그 밖에 육부차부각아문문이(六部箚付各衙門文移), 즉 육부에서 각 아문에 보내는 공문, 각도지휘사사차부각아문문이(各都指揮使司箚付各衙門文移), 즉 각 도지휘사사가 각 아문에 보내는 공문, 각포정사사차부소속아문문이(各布政使司箚付所屬衙門文移), 즉 각 포정사사가 소속 아문에 보내는 것도 같은 형식을 띠고 있다. 청나라에서 작성한 『육부성어주해』에도 “상관이 위원을 파견하는 일을 처리할 때에 모두 차문에 부치게 되어있는데, 이 글을 차부라고 한다[上官派委員辨事皆付箚文此文卽名箚付].”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점에서 명령의 성격이 담긴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의의

차부는 중국과의 외교 관계, 특히 원·명과의 관계에서 사대적인 관계를 보여주는 문서로 쓰였고, 왜인이나 야인, 특히 여진인과의 관계에서 관직을 수여하는 명령서로도 쓰였다. 원과 고려, 명과 조선, 조선과 여진·왜와의 관계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문서인 점으로 미루어 국내 문서적인 성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외교문서적인 성격이 강하였다. 중국, 조선, 일본 등 동북아시아 지역의 외교 관계를 살필 수 있는 문서 가운데 하나이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괴원등록(槐院謄錄)』
  • 『육부성어주해(六部成語註解)』
  • 이현구 역, 『(국역) 홍무예제』, 이현구, 1986.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편, 『(국역)통문관지』,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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