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수(兒旗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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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용호영, 훈련도감, 금위영 등의 군영에서 장교들이 부리던 어린 군사.

개설

아기수는 조선후기 용호영(龍虎營), 훈련도감(訓鍊都監), 금위영(禁衛營), 어영청(御營廳) 등의 군영에서 장교들이 부리던 어린 군사였다. 군영의 군병에서 결원이 생기면 아기수로 보충하기도 했다. 아기수는 대체로 군영의 원군(元軍)이나 여러 명목의 군병, 이른바 표하군(標下軍)의 일가이거나 가족 출신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들이 처음 군영에 들어오면 대체로 대년군(待年軍)으로 삼고 족록안(族錄案)에 편입시켜 놓았다. 이 중 젊고 건실한 자는 장초군(壯抄軍)으로 선발하여 순차적으로 수문군(守門軍), 치중복마군(輜重卜馬軍), 포군(鋪軍), 금송군(禁松軍), 아기수 등에 보충하게 하였다. 그리고 군영의 원군에 결원이 생기면 그 이전까지 근무한 성적에 따라 올려서 원군으로 임명하였다. 아기수도 시험을 치러 성적을 매기고 급료를 지급하기도 하였다.

담당 직무

아기수는 원군의 예비군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각 군영의 장관(將官)이나 장교(將校)들의 수하 군사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아기수도 등급과 정원이 있어 차례로 승진하도록 하였는데, 왕 호위군인 금군(禁軍)의 군영인 용호영의 경우에는 그 군병에 결원이 생길 경우 급료를 지급하는 유료아기수(有料兒旗手) 14명 중에서 가장 많이 근무한 자로서 충당하였다. 그리고 유료아기수에 결원이 있으면 급료를 지급하지 않는 근사아기수(勤仕兒旗手) 36명 중에서 선발하여 충당하고, 근사아기수에 결원이 있으면 대년아기수(待年兒旗手) 중에서 선발하여 충당하도록 하였다. 근사아기수의 배치는 별장(別將)에 붙은 아기수가 2명, 번장(番將)에 붙은 아기수가 7명, 당상군관(堂上軍官)의 아기수가 15명, 별부료병방(別付料兵房) 아기수가 2명, 순령(巡令) 아기수와 뇌자(牢子) 아기수가 각각 5명씩이었다. 아울러 교련관사후무료아기수(敎鍊官伺候無料兒旗手)가 150명이었다. 훈련도감의 경우에는 아기수가 38명이었고 어영청은 9명, 금위영은 아기수의 정원이 다소 분명하지 않다.

변천

훈련도감의 아기수들은 중순(中旬)에 무예 시험을 치러 성적을 매겼는데, 수문군·금송군·아기수·포군은 검(劍) 1차와 육량전(六兩箭)을 시험 보았다. 그 아래 대년군 등도 자원하는 경우 응시를 허가하였다. 수문군·금송군·아기수·포군은 그 성적이 상상등(上上等)이면 포(布) 한 필, 상중등(上中等)이면 쌀 세 말을 지급받았다. 급료를 지급받는 유료아기수 가운데 금위영 소속 아기수의 급료미(給料米)는 6두였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만기요람(萬機要覽)』
  • 차문섭, 『조선시대 군사 관계 연구』, 단국대학교출판부, 1996.
  • 차문섭, 『조선시대 군제 연구』, 단국대학교출판부,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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