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퇴미세(神堂退米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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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무세(巫稅)의 일종으로, 신당을 단위로 거둔 세금.

내용

조선 왕조는 태백산·계룡산·나주 금성산 등지의 신당에서 퇴미세(退米稅)를 징수했는데, 나주 금성산 신당의 경우 1년에 60석을 거두었다고 한다. 퇴미세란 명칭으로 미루어 굿에서 사용하고 남은 쌀 등의 물품에 부과하는 세금이란 뜻인데, 신당을 관리하는 무당이 신당 이용객으로부터 거두어 국가에 납부하도록 한 것 같다. 이렇게 징수한 퇴미세는 국가 기관의 운용 자금으로 충당되었으니, 예컨대 관곽(棺槨)의 제조와 판매를 담당하는 귀후서(歸厚署)나 국립 의료 기관인 활인서(活人署)의 경비가 그것이다.

퇴미세 징수의 취지는 다른 종류의 무세들과 마찬가지로 무당이나 무속 신봉자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줌으로서 무속을 탄압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초의 취지가 어떻든 간에 세금을 걷는다는 것은 무속을 국가가 인정하는 셈이다. 일부 지방관들이 무속 탄압의 일환으로 신당 출입을 통제하면서 퇴미세의 징수가 현실적으로 어렵게 되기도 하였다. 나주의 경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퇴미세를 무녀들에게 분담하게 했다. 결국 16세기부터 무속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차원에서 퇴미세 징수를 중단하자는 논의가 시작되었고, 일부 국가 기관의 재정이 어려워진다는 반대론도 있었지만, 1518년(중종 13) 마침내 폐지되었다.

용례

聞全羅道羅州錦城山神堂退米 多收而納諸歸厚署 今方禁斷淫祀之時 而有如此之稅 是自上敎之使爲也 羅州牧使以其狀 呈報于戶曹及本府 其呈文曰 米無出處 故分徵於巫女云(『중종실록』 13년 1월 18일)

참고문헌

  • 서영대, 「한국 무속사의 시대구분」, 『한국무속학』10, 한국무속학회,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