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세(巫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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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남녀 무당에게 징수하는 세금의 총칭.

개설

고려후기부터 무당에게 세금을 징수한 것이 사실로 확인된다. 당시에는 무당에게 일시적으로 세금을 징수한 것으로, 정식 세금은 아니었다. 이후 조선시대에는 유교이념에 배치되는 무풍(巫風)을 억제하고,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과의 균등한 세금 징수를 위해서 무세(巫稅)를 정식 세금으로 제도화하였다. 특히 무세는 대부분 남녀 구분 없이 징수되었는데, 전통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세금 납부가 거의 없었던 점을 고려하면 예외적인 세금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 무세는 무업세(巫業稅), 신당퇴물세(神堂退物稅), 신포세(神布稅) 등 세 종류가 있었다.

무세는 조선전기 내내 점차 정비되었으며, 조선후기에는 대동법 실시, 상평통보 발행, 상품 화폐 경제의 발달에 따라 마포 대신 면포, 지역에 따라 돈으로 징수하는 등 내용의 변화가 있게 되었다. 이후 영조 때 일시적으로 무녀에 대한 무세 징수가 폐지되기도 하지만, 정조 때 다시 부활하였다. 무세는 1895년에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폐지되었다.

내용 및 변천

고려후기 국가 재정을 보충하기 위해 무당에게 일시적으로 세금을 징수하였다. 조선은 무풍(巫風)을 근절하기 위해 무세를 제도화 하였다. 조선시대 무세는 크게 세 종류로 구분된다.

첫째, 신당퇴물세는 무당이 신당에서 굿을 할 때 신령에게 올렸던 제물의 일부를 국가에 납부하는 것이다. 제물 가운데 쌀을 납부하면 신당퇴미세(神堂退米稅)라고 하였다. 신당퇴물세는 무당에 대한 정식의 세금이라기보다 일종의 불법적 수탈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둘째, 신포세는 함경도와 강원도에서 무속 행위가 성행한다는 이유로 무당이 아닌 민호(民戶)로부터 징수한 것이다. 본래 신포세는 무업세였지만, 함경도와 강원도가 양전사업(量田事業)에서 제외되어 세금 수입이 줄게 되자 세수 확보를 위해서 무당이외에 민호에게도 징수한 것으로 보인다.

셋째, 무업세(巫業稅)는 무당의 직업에 대한 세금으로 일종의 영업세 성격이 강하다. 무업세는 1년에 2번 저화(楮貨)로 징수되었는데 1423년(세종 5)부터 1년에 1번으로 감해졌으며, 맹인 무당은 세금이 면제되었다. 한편 저화의 교환 가치 하락으로 동전이 통용되자, 무세 징수도 정포 1필과 여자 50문, 남자 100문의 동전을 납부하는 것으로 변화하였다. 1464년(세조 10)에는 정확한 무세 징수를 위해 국가에서 3년마다 무당의 명부를 만들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무세는 정비되었으며, 1517년(중종 12)을 기점으로 무세 징수에 대한 찬반 논의가 전개되었다. 신용개(申用漑), 장순손(張順孫), 정순붕(鄭順朋) 등은 법률에 의해서 무세를 수취하게 되면 오히려 무당을 공인하는 것이 된다는 이유를 들어 무세 혁파를 주장하였다. 반면 정광필(鄭光弼), 최숙생(崔淑生) 등은 무속 행위를 근절하지 못하는 현실 상황에서 무세마저 폐지되면 무속이 더욱 번성할 우려가 있기에 무세 징수를 찬성하였다. 결국 논의는 무세 수취를 유지하는 것으로 종결되었다(『중종실록』 12년 9월 18일).

한편 무당의 납부액은 정포 1필과 동전이었으나 조선후기 대동법의 실시에 따라 정포(正布, [麻布]) 대신 면포(綿布)로 바뀌었고, 지역에 따라 포 대신 돈으로 납부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는 새로 발행한 상평통보의 보급과 수세 및 납부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무세는 1774년(영조 50)에 여자 무당에 대한 세금이 폐지되었다. 이후 남자에게만 무세가 징수되다가 1779년(정조 3)에 다시 여자에게도 징수하였다. 무세는 1895년에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폐지되었다.

이밖에도 조선 정부는 국가에 대사가 있을 때마다 무당에게 별도로 비용을 수취하였다. 가령 동전을 주조하기 위해 구리를 징수하거나 명나라와 교역할 말이나 소 등을 징수하였다. 특히 서울에 거주하는 무당은 명나라에 진상하는 포가 부족한 경우에 포를 할당받았다. 이것은 『경국대전』에 법률로 명문화되었으며, 이후 『대전회통』에까지 존속하였다.

무당은 국가에 세금과 별도의 비용을 납부한 반면에 전염병이 유행하여 환자를 정성껏 돌봐준 경우에 무세나 부역을 감면받기도 하였다. 징수된 무세는 중앙 관청의 경비뿐만 아니라 지방 관청 및 군영의 경비, 기타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되었다.

의의

조선 왕조는 주자학적 지배 질서에 배치되는 무속을 근절하려고 노력하였다. 그 일환으로 무당에게 경제적 부담을 지워 무속에서 멀어지게 하고자 무세를 징수하였다. 무세는 국가 재정 수입의 한 부분을 차지하며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한편으로 무세는 국가가 무당을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하는 것이 되어 국가 시책의 자기모순을 그대로 드러낸다. 곧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무세는 조선 왕조 전시기를 통해 존속되다가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다.

또한 무세 징수 대상은 남녀에 구분 없이 무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면 모두 적용되었다. 전통 사회에서 여성이 세금을 납부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점을 고려하면 특기할만하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임학성, 「조선시대 무세제도와 그 실태」, 『역사민속학』3, 1993.
  • 이필영, 「조선후기의무당과 굿」, 『정신문화연구』53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3.
  • 민정희, 「조선전기 무당의 호칭과 종류」, 『역사민속학』10, 2000.
  • 서영대, 「무세」, 『한국민속신앙사전-무속신앙』1, 국립민속박물관,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