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수(熟手)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음식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개설

조리사(調理士)의 또 다른 명칭이다.

담당 직무

조선왕조에서 궁중의 음식을 맡아 운영하는 기관을 사옹원(司饔院)이라 했다. 사옹원의 전신은 1392년(태조 1)에 설치한 사옹방(司饔房)이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사옹원에는 문관직으로 정3품 정(正), 정3품과 종3품직의 제거(提擧), 그 아래로 정4품·종4품의 제검(提檢), 종4품 첨정(僉正), 종5품 판관(判官), 종6품 주부(主簿), 종7품 직장(直長), 종8품 봉사(奉事), 종9품 참봉(參奉)이 있다. 이들은 행정 실무를 맡아보는 관리이고, 실제로 궁궐 내의 각 전에서 음식을 담당하는 잡직 관리가 근무하였다.

재부(宰夫) 는 잡직 종6품 반감(飯監)으로 주방장에 해당한다. 정원은 1명이며, 대전과 왕비전의 수라간 담당이다.

선부(膳夫) 는 잡직 종7품 반감으로 조리사이다. 정원은 1명이며, 문소전의 수라간, 대전 다인청에서 식사를 담당한다.

조부(調夫) 는 잡직 종8품 반감으로 조리사이다. 정원은 2명이며, 대전 수라간, 왕비전 다인청, 세자궁·빈궁의 수라간 담당이다.

임부(飪夫)는 잡직 정9품 반감으로 화열(火熱)을 다루는 조리사이다. 정원은 2명이다. 대전 수라간, 왕비전 다인청, 세자궁·빈궁 수라간 담당에 1명, 대전의 은기성상(銀器城上), 왕비전 수라간, 문소전 수라간, 세자궁 다인청 담당에 1명이다.

팽부(烹夫) 는 잡직 종9품으로 삶는 일을 다루는 조리사이다. 7명을 두었다. 2명은 대전의 은기성상, 왕비전 수라간, 문소전 수라간, 세자궁 다인청을 담당하고, 4명은 대전 다인청, 왕비전의 은기성상, 세자궁·빈궁의 수라간을 담당하고, 1명은 왕비전 다인청, 세자궁·빈궁의 은기성상, 세자궁 다인청을 담당했다.

이외에 다음과 같은 차비노(差備奴)들이 문소전, 대전, 왕비전, 세자궁에 배속되어 있었다. 차비노는 천한 신분으로 특별한 일을 맡기기 위해 임시로 고용한 노(奴)이다.

반감(飯監)은 궐내 각 전의 조리 책임자로 음식물과 물품의 진상을 맡았다. 16명을 두었다. 재부, 선부, 조부, 임부에 임명되었다.

별사옹(別司饔)은 고기만을 다룬다. 28명을 두었다.

탕수색(湯水色)은 물 끓이는 일만을 전적으로 담당한다. 26명을 두었다

상배색(床排色)은 상 차리는 일을 맡았다. 22명을 두었다.

적색(炙色)은 생선 굽는 일만을 다룬다. 18명을 두었다.

반공(飯工)은 밥 짓는 일만을 맡았다. 30명을 두었다.

포장(泡匠)은 두부 만드는 일만을 맡았다. 10명을 두었다.

주색(酒色)은 술 빚는 일만을 맡았다. 12명을 두었다.

다색(茶色)은 차 끓이는 일을 맡아보았다. 10명을 두었다.

병공(餠工)은 떡 만드는 일만을 맡아보았다. 10명을 두었다.

증색(蒸色)은 음식물 찌는 일만을 맡아보았다. 22명을 두었다.

등촉색(燈燭色)은 등촉 밝히는 일을 맡아보았다. 10명을 두었다.

성상(城上)은 기물(器物)을 맡아 간수하는 일을 맡아보았다. 56명을 두었다.

수공(水工)은 물 긷는 일을 맡았다. 30명을 두었다.

별감(別監)은 잡무에 종사한다. 86명을 두었다.

수복(守僕)은 청소를 담당한다. 4명을 두었다.

이상 거의 남성들로 구성된 조리 종사자를 열거하였다. 종6품에서 종9품까지의 주방장 격인 재부를 필두로 부주방장 격인 선부, 그리고 조리사인 조부·임부·팽부가 가장 하층 계급인 자비들이었던 각 색장(色掌)을 지휘·감독하였다.

재부·선부·조부·임부·팽부는 고도의 조리 기능을 가진 남자들로서 이들 조리기능자들을 숙수(熟手)라고 했는데, 하층계급인 각 색장들도 숙수라고 칭했다[『명종실록』 원년 9월 5일 19번째기사].

변천

1895년(고종 32) 사옹원이 전선사(典膳司)로 바뀌면서 사옹원 제도는 폐지되어 대부분의 숙수는 궁에서 나오게 되었다. 전선사는 1910년(융희 4)까지만 존속하였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김상보, 『조선시대의 음식문화』, 가람기획, 2006.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