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거(提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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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옹원(司饔院)에만 둔 정3품 당하관(堂下官) 및 종3품관 품계의 녹봉(祿俸)을 받지 않은 관원.

개설

1485년(성종 16)에 완성된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제거(提擧)의 윗품계를 도제조(都提調) 1원(員)·제조(提調) 4원·부제조(副提調) 5원으로 규정하였고 제거로는 정3품 당하관 1원과 종3품 1원의 2원을 두었다.

제조의 조(調)는 화(和)를 의미하여서 제조 역시 사옹원의 사무를 조화롭게 처리하는 자를 이른다. 도제조·제조·부제조·제거의 순으로 품계별로 직임을 두었다. 제거까지는 모두 녹봉을 받지 않았다. 도제조는 사옹원에 출근하지 않고 제조 이하 제거는 상시 출근하여 사옹원의 운영 상태를 관리, 검찰(檢察)하였다. 이들 모두는 전의(典醫) 자격을 갖고 있었으므로, 실제적으로 내의원(內醫院) 등에 소속되어 겸직하면서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담당직무

내시부에 속한 어선(御膳)의 총책임을 맡은 상선(尙膳)의 품계가 종2품임으로 제거는 상선보다 품계가 낮았다. 식의(食醫)이기도 하였던 상선이 어선의 식단을 짜서 제거에게 하달하면 제거의 감독하에서 수라간에서는 각종 음식이 만들어졌다. 제거는 사옹원에서 근무하는 자들이지만 국가적 행사인 연향 등이 있을 때에는 차출되어 행사를 담당하였다.

변천

제거는 고려 때 보문각(寶文閣)·국자감(國子監)·연경궁제거사(延慶宮提擧司)의 한 벼슬이었다. 1443년(세종 25)에는 내의원에 소속된 삼품직(三品職)을 제거라 하였으나 후에 사옹원에만 제거를 두게 하였다(『세종실록』 25년 6월 15일). 조선왕조 말에는 종묘서(宗廟署)·사직서(社稷署)·영희전(永禧殿)·경모궁(景慕宮) 등에 둔 칙임(勅任)의 으뜸벼슬을 가리켰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김상보, 『조선시대의 음식문화』, 가람기획, 2006.
  • 한우근 외 역;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인문연구실 편, 『(역주)경국대전: 주석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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