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船匠)
주요 정보 | |
---|---|
대표표제 | 선장 |
한글표제 | 선장 |
한자표제 | 船匠 |
하위어 | 병선장(兵船匠), 조선장(造船匠) |
분야 | 정치/행정/관속 |
유형 | 직역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조선 |
집필자 | 박종민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선장(船匠)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선조실록』 4년 11월 29일, 『세조실록』 6년 7월 1일, 『세종실록』 5년 2월 28일, 『성종실록』 3년 3월 28일, 『정조실록』 17년 1월 11일 |
배를 만들거나 개삭(改槊), 개조하는 장인.
개설
『경국대전(經國大典)』「공전(工典)」에 따르면, 경공장(京工匠)으로서 선장(船匠)은 전함사(典艦司)에서 10명이 활약하였다. 선장은 중앙 관서뿐만 아니라 각 도의 각 진(鎭)과 포(浦)에 배치되어서 배를 만들고 수리하고 개조하였다. 그들은 실제로 도의 각 진과 포, 관련 지역에 배치되어서 열악한 여건 하에서 배의 제작과 개삭, 개조 작업에 참여하였다. 개삭은 배의 수명 연장을 위하여 목선을 일정 기간 사용한 후에 묵은 나무못[木釘]을 전면적으로 새 나무못으로 교체하는 선박 수리 방식이다.
담당 직무
수운(水運)용 모든 도선(渡船)은 선장으로 하여금 5년마다 수리하고 10년마다 개조하도록 명문화하였다. 현실적으로 조운선은 만든 지 3년이 지나면 선장이 개삭했고, 다시 3년이 지나면 재차 개삭한 후에 다시 3년이 지나면 개조하였다(『선조실록』 4년 11월 29일). 임진왜란 이후에 조선(漕船)과 전선(戰船), 병선(兵船)은 6년이 지나서 나무를 덧대고[添木] 개삭을 하고, 10년이 지나서 본판과 전선(全船)에 나무를 덧대고 개삭하였다. 배는 건조 이후 16년이 지나서 또다시 나무를 덧대고 개삭을 진행하였으며, 20년이 지나서 비로소 개조되었다. 조선은 도사(都事)가, 전선과 병선은 수사(水使)가 친히 심사하고 영문(營門)에 보고한 후에 개조와 개삭을 허가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군선과 조운선 등 많은 수량의 관선 건조와 유지가 어려워서 합리적이고 통일적인 유지와 보수를 완벽하게 하고, 수명도 연장하기 위해 수리와 개삭, 신조 연한을 규제하였다.
선장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서 중앙 관청과 진, 포 등에 배치되어서 배의 제작과 수리, 개조 작업에 참여하였다. 중앙의 해당 관청이 벽단(碧團)을 포함한 평안도의 여러 진과 전라도 지역의 조선 건조에 부족한 선장을 징발한 사실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특히, 전라도는 관찰사로 하여금 선장 100명, 목공 200명을 징발해서 부안과 완도로 보내도록 하였다(『세조실록』 6년 7월 1일). 이는 선장이 경공장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다수가 활동한 사실을 입증하는 셈이다.
선장은 열악한 근무 여건하에서 사계절 내내 배를 만들어야 해서 역사(役事)는 너무 고통스러웠다(『세종실록』 5년 2월 28일). 병조는 선군(船軍)의 예에 따라서 선장의 본가를 물심양면으로 도우면서 보호하였다. 특히, 관은 농한기에 진과 포에서 가까운 고을에 거주하는 백성까지 동원하여 배를 개수하고 개조하였다(『성종실록』 3년 3월 28일).
변천
배는 인력 수송과 물자 운송, 국토방위와 전쟁 수행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운송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인력 수송은 왕이 능원(陵園)을 배알하기 위해서 나루를 건널 때, 담당 관청이 주교를 만들어서 일행들이 건너도록 한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주교도감(舟橋都監)은 경강(京江)의 큰 배들을 서로 연결해서 교량을 만들었다(『정조실록』 17년 1월 11일). 물자 운송은 선주들이 소금과 미곡, 각종 생활용품 등을 배로 운송하였고, 곡식을 싣거나 행상을 하기 위해서 수시로 멀리 출행하였다. 국토방위는 삼면이 바다로 병선을 곳곳에 배치해서 왜구의 잦은 침입을 방어하였다. 일련의 사실들은 조선시대에 배의 숫자가 적지 않았고, 활용 폭이 매우 넓었음을 보여준다.
조선시대 배는 사용 공간과 목적, 소유 관계에 따라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로 사용 공간에 따라서 조선시대 배는 해선(海船)과 강선(江船)으로 나뉘고 크기에 따라서 대선(大船)과 중선(中船), 소선(小船)으로 다시 구분된다. 해선의 대선은 길이 42척, 너비 18척 9촌 이상, 중선은 길이 33척 6촌, 너비 13척 6촌 이상, 소선은 18척 9촌, 너비 6척 3촌 이상이다. 강선의 대선은 길이 50척, 너비 10척 3촌 이상, 중선은 길이 46척, 너비 9척 이상, 소선은 길이 41척, 너비 8척 이상이다.
두 번째로 사용 목적에 따라서 조선과 전선, 병선으로 나뉜다. 조선은 지방의 조세미(租稅米)와 공물(貢物)을 주창(州倉)에서 경창(京倉)으로 실어 나르던 배이다. 조운선의 수난(水難)을 막기 위하여 수로에서 참선(站船)이 앞장서서 인도하였다. 전선과 병선은 국토방위와 전쟁 수행 등 국방과 관련해서 업무와 작전을 수행했다.
세 번째로 소유 관계에 따라서 관선(官船)과 사선(私船)으로 구분할 수 있다. 관청은 관선을 각 진(津)에 배속하였다. 경강에 관선은 광진 4척, 송파 9척, 삼전도 3척, 신천 2척, 한강 15척, 노량 15척, 양화도 9척, 공감 5척, 천관 5척을 배속시켰다. 경강 사선의 경우, 매년 대전에 의거해서 해당 관청은 이들을 추쇄해서 대‧중‧소 크기[尺]를 측량해서 배의 자호(字號)를 새긴 후에 낙인(烙印)하였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속대전(續大典)』
- 김재근, 『한국선박사연구』, 서울대학교 출판부, 1984.
- 장경희, 「朝鮮後期 凶禮‘都監’의 匠人硏究」, 『미술사논단』 8, 한국미술연구소, 1999.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