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선(渡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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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수로 교통의 중심지인 진(津) 또는 도(渡)에 소속되어 사람이나 짐을 실어 나르던 나룻배.

개설

조선시대 강을 사이에 둔 육지간의 교통 편의와 범죄인에 대한 감시를 겸행하기 위하여 설치된 진(津) 또는 도(渡)에 소속된 선박을 진선(津船) 또는 도선(渡船)이라고 한다. 넓은 뜻으로는 일반 강가에서 운행하는 나룻배를 모두 진선이나 도선이라고 불렀다. 조선후기에는 도선보다는 진선이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었다. 도선은 주로 강을 건너는 사람이나 짐을 운반하는 용도로 사용되었고, 일부 세곡을 운반하는 역할도 담당했다.

연원 및 변천

도선이 언제 처음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유래는 꽤 오래된 듯하다. 조선시대 들어서 조정은 도(渡)를 설치하고, 그 책임자로 별감(別監)을 두었다. 그러다 1415년(태종 15) 한강도, 양화도, 낙하도 등 7곳에 도승(渡丞)을 설치하여 도선을 관할하게 했다. 도선은 보통 일반 백성을 대상으로 운행하였으나 1789년(정조 13) 주교사가 설치되면서 국왕의 행행(行幸)에도 이용되기 시작했다. 비록 국왕의 행행이 자주 있었던 것은 아니나 당시 부교(浮橋) 가설은 많은 폐단을 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다 1882년(고종 19) 주교사가 혁파되고 1902년(광무 6) 도진회사(渡津會社)가 설립되면서 서울의 도선 운행을 관리하였다.

형태

도선은 선형에 따라 크기가 다르다. 대선의 길이와 너비는 각각 55척-10.3척, 중선은 46척-9척, 소선은 41척-8척이었다. 이를 해선(海船)과 비교해보면 강선은 해선보다 길이가 길며 폭이 좁다. 이는 좁은 곳을 왕래하면서 빠르게 운행하기 위함이다. 도선은 5년마다 수리하고 10년이 되면 개조해야만 했다. 이때 쓰는 재료는 조운선에 쓰고 남은 송목(松木)을 주로 사용하였다. 처음에는 나무못을 사용하여 만들었는데 수명이 짧아 세종 때부터는 쇠못을 사용하여 개조하였다.

참고문헌

  • 『대전회통(大典會通)』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김재근, 『한국의 배』, 서울대학교출판부, 1994.
  • 고동환, 『조선후기 서울상업발달사연구』, 지식산업사, 1998.
  • 이현종, 「京江津·渡·船에 대하여」, 『향토서울』27,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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