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단(先農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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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며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

개설

조선시대에는 국가의 제사 대상을 몇 가지로 구분하였다. 하늘에 속한 자연물은 ‘천신(天神)’, 땅에 속한 것은 ‘지기(地祇)’라고 하였다. 또 천신에게 올리는 의례는 ‘사(祀)’, 지기에 지내는 제사는 ‘제(祭)’라고 불렀다. 그에 비해 살아서 행한 공덕(功德)을 인정받아 죽은 뒤 신으로 모셔진 사람은 ‘인귀(人鬼)’라 하고, 인귀에게 지내는 제사는 ‘향(享)’이라고 하였다. 신농씨와 후직씨는 백성에게 농사짓는 법을 보급한 공덕으로 사후에 국가의 제사 대상이 되었으므로, 이들에게 지내는 제사는 ‘향’에 해당하였다. 선농단은 이들에 대한 제사 즉 ‘향’을 거행하던 제단으로, 이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례는 ‘향선농의(享先農儀)’라고 하였다.

위치 및 용도

조선시대의 선농단은 한양 동대문 밖의 동쪽 교외, 즉 동교(東郊) 보원동동(普院東洞)에 위치해 있었다.

고대 중국의 전설상의 제왕(帝王)이자 처음으로 농사짓는 법을 가르쳤다고 알려진 신농씨와, 요(堯)임금의 농관(農官)이었던 후직씨에게 향사하던 제단으로, 적전단(籍田壇) 또는 교단(郊壇)이라고도 하였다. 매년 음력 2월 경칩이 지난 해일(亥日)에 왕이 직접 참여하는 ‘친향선농의(親享先農儀)’나, 왕을 대신해 대신(大臣)이 참여하는 ‘향선농섭사의(享先農攝事儀)’를 거행하며 한 해의 풍년을 빌었다[『세종실록』 오례 길례 의식].

한편 숙종대에는 선농단에 대신(大臣)을 보내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는 기우제를 거행하였으며(『숙종실록』 3년 6월 30일)(『숙종실록』 5년 7월 21일), 1704년(숙종 30)에는 왕이 친히 선농단에 행차하여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숙종실록』 30년 5월 22일).

변천 및 현황

선농단은 고려시대에도 있었는데, 의종대의 규모는 사방이 3장, 높이가 5척이었다. 사방에 계단이 있었고 2개의 담이 둘러져 있었는데, 담의 길이는 각각 25보(步)였다.

조선시대에는 한양 동쪽 교외에 선농단을 설치하였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1406년(태종 6)에 적전단을 쌓고 관리하는 사람을 두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1414년(태종 14)에 예조(禮曹)에서 아뢴 설치 규정에 따르면, 선농단의 규모는 높이가 3척, 둘레가 8보 4척이었다. 또 단의 사방에 섬돌을 설치하고, 각각 25보의 담 2개를 두도록 하였다(『태종실록』 14년 6월 13일). 1416년(태종 16)에는 예조의 건의에 따라 재실(齋室)을 짓게 하였다. 세종 연간에는 선농단의 규모를 사방 2장 3척, 높이 2척 7촌으로 변경하였으며, 1424년(세종 6)에는 선농단 주위에 소나무를 심었다(『세종실록』 6년 1월 20일). 이후 1908년(융희 2)에는 ‘칙령 제50호 향사이정건(享祀釐正件)’에 따라 선농단의 신주를 사직단(社稷壇)으로 옮기고, 향사 의례는 폐지하였다.

선농단 터는 오늘날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제기동에 남아 있다. 1972년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되었다가 2001년에 사적 제436호로 변경 지정되었고, 2011년 7월 28일에는 ‘서울 선농단’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79년에 동대문구에서 향사를 재개하였는데, 1992년부터는 지역 주민으로 구성된 선농단 친목회에서 이를 넘겨받아 매년 거행하고 있다.

형태

선농단은 신위를 모시고 제사 음식인 예찬(禮饌)을 진설하는 제단과, 단을 둘러싼 2개의 담, 향사가 끝난 뒤 폐백과 축판을 묻는 예감(瘞坎)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제단은 너비 2장 3척, 높이 2장 7척의 정사각형 모양으로, 단의 사방에 오르내릴 수 있는 섬돌을 설치하였다. 단을 둘러싼 2개의 담은 길이가 각각 25보였으며, 예감은 단의 북쪽에 땅을 파서 만들었다. 향사를 거행할 때 정위(正位)인 신농씨의 신위를 모시는 신좌(神座)는 단의 북쪽에 남향으로, 정위와 짝이 되어 함께 제사를 받는 후직씨의 신좌는 단의 동쪽에 서향으로 배치하였다.

참고문헌

  •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이욱, 「근대국가의 모색과 국가의례의 변화-1894~1908년 국가제사의 변화를 중심으로」, 『정신문화연구』95,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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