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의(裼衣)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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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석의 |
한글표제 | 석의 |
한자표제 | 裼衣 |
관련어 | 구의(裘衣) |
분야 | 생활·풍속/의생활/의복 |
유형 | 의복 |
지역 | 대한민국, 중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최은수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석의(裼衣)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조실록』 11년 3월 26일, 『세조실록』 11년 3월 26일 |
양반 자제들이 입던 겉옷.
내용
석의(裼衣)는 옛날에는 구의(裘衣) 위에 입던 겉옷이었으며, 중국 선진(先秦) 시대에 확립된 옷이다. 겨울에 구(裘)를 입고 그 위에 석의를 입었다. 『예기(禮記)』 옥조(玉條)에는 구는 석(裼)이라고 하였으며 보기가 좋다고 하였다. 이에 공영달(孔穎達)의 소(疏)를 보면, 구는 위에 석의만을 더 입는데 석의는 오로지 가죽 옷에 입어야 보기 아름답고 정중한 옷이라고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1465년(세조 11)에 양반 자제가 입는 옷인데 시정의 무뢰한 무리와 유협(游俠)·불량(不良)한 무리가 농업에 종사하지 않고 호화스러운 사치만을 서로 숭상하여 날로 황음방사(荒淫放肆)하고, 살찐 말을 타고 가벼운 비단 옷을 입으며 다투어 길을 달리면서 조신(朝臣)과 같은 무리를 능멸하며, 평민 보기를 견양(犬羊)과 같이 하니 염폐(廉陛)가 등급을 잃고 등위(等威)가 분별이 없으며 장복(章服)의 물채(物采)가 혼합되어 변별할 수 없으니, 주황색의 치자 띠[桅子帶]와 같은 것을 참람되게 의방하여 감히 두르고 자색(紫色)의 석의를 부러워하여 드러내어 입는다고 하여 상하의 명분을 삼가고자 하였다(『세조실록』 11년 3월 26일).
용례
前行上護軍金新民上言曰 今也市井無賴之徒 游俠不良之輩 不事農業 坐肆謀生 專以乘時射利 財累巨萬 布帛柱華屋 米粟積高廩 豪侈相尙 日肆荒淫 乘肥衣輕 爭馳於路 蔑朝臣若等夷 視平民如犬羊 廉陛之失級 而等威之無別 章服物釆 混不能辨 朱黃色有似枙子帶也 則僭擬而敢帶 紫色裼衣 兩班子弟所服也 則歆羨而顯服 以至入網之笠 夾金之靴 無所不着 奢僭之極 何所憚而不敢(『세조실록』 11년 3월 26일).
참고문헌
- 徐海榮, 『中國服飾大典』, 華夏出版社,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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