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봉사(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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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 국가에서 공인한 36사(寺) 가운데 하나로, 전라남도 담양군에 위치한 절.

개설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에 위치한 서봉사(瑞峰寺)의 창건 및 연혁은 알려져 있지 않다. 조선 태종대에 242개 사찰을 공인할 때 새로 선정된 88개의 명찰 중 하나였고 총남종에 소속되었다. 세종대 선교양종 36개 사찰을 지정할 때 교종 18개사의 하나로 편입되었다가 몇 년 후 누락되고 금강산정양사(正陽寺)가 대신 들어갔다.

변천

조선이 개국한 후 태종대에 억불 정책이 가시화되었는데, 1406년(태종 6) 11개 종파의 242개 공인 사찰을 제외한 전국 사찰의 전민(田民)이 속공되었다. 당시 지정된 242개 사찰을 종파별로 보면, 조계종(曹溪宗)총지종(摠持宗)을 합쳐서 70사, 천태종 계열인 소자종(疏字宗)법사종(法事宗)은 43사, 화엄종(華嚴宗)도문종(道門宗)은 모두 43사, 자은종(慈恩宗) 36사, 중도종(中道宗)신인종(神印宗)은 합쳐서 30사, 남산종(南山宗)시흥종(始興宗)은 각각 10개 사찰이었다(『태종실록』 6년 3월 27일).

다음 해에는 242개 사찰을 정할 때 유서 깊은 대가람이 누락되고 이미 없어진 사찰에 주지가 임명되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고 하여, 산수 경치가 좋은 사찰을 대신 선정하라는 조치가 내려졌다. 이에 명산의 대찰 88개를 새로 선정해 주로 읍내에 있는 고려 이래의 자복사(資福寺)를 대체하게 하였다(『태종실록』 7년 12월 2일). 자복사는 고려시대에 나라의 안녕과 복을 빌기 위해 각 지역의 중심지에 설치했던 비보사(裨補寺)로서, 위의 조치는 조선의 지역 질서 개편과 연동하여 고려의 유산을 혁파하고 산간에 있는 명찰로 대체한 것이다. 또한 11개 종파가 조계종, 천태종, 화엄종, 자은종, 시흥종, 중신종(中神宗), 총남종(摠南宗)의 7개로 축소 또는 통합되었다. 당시 창평 서봉사는 총남종 소속 사찰로서 새로 지정된 88개 사찰에 포함되었다.

1424년(세종 6) 세종은 기존의 7개 종단을 선교양종으로 나누고 각각 18개씩 36개 사찰만 공인하였는데, 이때 서봉사는 교종 18사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서봉사는 교종 18사에 포함되었고 원래 보유 전지 60결에 더하여 90결이 추가로 지급되어 150결의 소유가 허용되었고 거주 승려는 70명으로 정해졌다. 같은 전라도의 전주경복사(景福寺)는 원속전 100결에 50결이 더해졌고 거주 승려는 70명으로 서봉사와 같은 규모였다(『세종실록』 6년 4월 5일).

하지만 몇 년 후 선종에 소속된 전라도 태인의 흥룡사(興龍寺)와 교종의 서봉사는 산수가 좋은 명찰이 아니라는 이유로 강원도금강산의 장안사(長安寺)와 정양사로 각각 대체되었고, 흥룡사와 서봉사의 전지를 모두 옮기게 하였다(『세종실록』 7년 5월 12일). 이로써 서봉사는 국가가 공인한 36개 사찰에서 제외되었고 이후의 실상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현재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에 서봉사의 터만 남아 있다.

참고문헌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 권상로, 『한국사찰전서』,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 이능화, 『조선불교통사』, 신문관, 1918.
  • 高橋亨, 『李朝佛敎』, 寶文館,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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