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혜(靸鞋)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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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삽혜 |
한글표제 | 삽혜 |
한자표제 | 靸鞋 |
상위어 | 혜(鞋) |
하위어 | 흑웅피삽혜(黑熊皮靸鞋) |
관련어 | 온혜(溫鞋) |
분야 | 생활·풍속/의생활/이 |
유형 | 의복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최은수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삽혜(靸鞋)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성종실록』 19년 8월 17일, 『성종실록』 19년 8월 17일, 『연산군일기』4년 6월 15일, 『성종실록』 3년 4월 23일, 『성종실록』 3년 4월 23일 |
가죽이나 풀을 엮어 만든 것으로 뒤축 울이 없는 신.
내용
삽혜(靸鞋)는 왕을 비롯하여 왕세자·대군(大君)·의빈(儀賓) 등 왕실의 남자들이 신는 신이었으나, 성종 때에는 사치를 좋아하는 유생들도 즐겨 신었다. 이에 1488년(성종 19) 장령(掌令)권경희(權景禧)가 오늘의 유생들은 사치를 좋아하고, 이미 습성이 되어 졸지에 변하기는 어렵지만, 삽혜를 신지 못하게 하라고 건의하였으며(『성종실록』 19년 8월 17일), 이에 왕은 성균관 유생의 사치를 규거(糾擧)하는 절목을 아뢰라고 하였다(『성종실록』 19년 8월 17일). 1498년(연산군 4) 「사치금제절목」의 내용에도 삽혜는 『대전(大典)』에 실려 있으니 예전대로 하라고 한 것으로 보아 유생의 삽혜 착용이 금지되었음을 알 수 있다(『연산군일기』4년 6월 15일).
삽혜는 겉은 검은색의 곰가죽으로 하고 안은 흰색의 사슴가죽으로 만들었으며 뒤꿈치 안쪽으로는 자주색의 사피근을 대고 흰색 개가죽으로 도리를 두르고 대홍색과 초록색 비단으로 휘를 돌려 화려하게 꾸민 신이다. 1472년(성종 3)에는 진상하는 삽혜의 장식에 필단(疋段)을 사용하지 말라고 하였다(『성종실록』 3년 4월 23일). 『상방정례(尙方定例)』에는 대전(大殿) 탄일(誕日)과 세자궁의 탄신 진헌 및 정조(正朝)·중삼(重三)·단오(端午)·추석(秋夕)·동지(冬至)의 절일(節日)에 각각 흑웅피삽혜(黑熊皮靸鞋) 1부를 올렸으며, 대군과 의빈 등의 가례에도 흑웅피삽혜를 올렸다고 하였다.
용례
傳曰 今後進上靸鞋粧飾 毋用匹段(『성종실록』 3년 4월 23일)
참고문헌
- 『상방정례(尙方定例)』
- 국립문화재연구소, 『화혜장』, 민속원, 2007.
- 단국대학교석주선기념박물관 편, 『화(靴)·혜(鞋)·이(履)』, 단국대학교석주선기념박물관, 2004.
- 유희경, 『한국복식문화사』, 교문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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