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급수(三急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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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의 국상(國喪) 직후 노론 세력이 경종을 시해하기 위해 구상했다고 전하는 세 가지 방법.

개설

삼급수란 노론 세력이 경종을 시해하기 위해 구상했다고 하는 세 가지 방법으로, 삼수(三手)라고도 하며, 대급수(大急手)·소급수(小急手)·평지수(平地手)를 말한다(『경종실록』 2년 4월 13일). 대급수는 보검을 이용한 것이고, 소급수는 독약을 이용한 것이며, 평지수는 전지(傳旨)를 위조하는 방법을 말한다. 1722년(경종 2) 목호룡(睦虎龍)의 고변(告變)으로 드러났으며, 이로 인해 노론 세력은 대거 화를 당하였다. 1741년(영조 17) 관련된 옥안(獄案)이 소각되면서 최종적으로 소론 세력에 의한 무고(誣告)였다고 판정되었다.

내용 및 특징

삼급수는 1722년 3월 27일 목호룡이 역모를 고발하는 내용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삼급수란 노론 계열의 정인중(鄭麟重)·김용택(金龍澤) 등이 세자로 있던 경종을 시해하기 위해 동원했다고 전하는 대급수·소급수·평지수의 세 가지 수단을 말한다.

대급수는 김용택이 보검을 백망(白望)에게 주어 숙종의 국상 때 담장을 넘어서 궁궐로 들어가 당시의 세자인 경종을 시해하려고 한 것을 말한다. 소급수는 이기지(李器之)·정인중·이희지(李喜之)·김용택·이천기·홍의인(洪義人)·홍철인(洪哲人)이 은(銀)을 지씨(池氏) 상궁에게 주고, 상궁이 독약을 타서 세자를 시해하려고 하였다는 것이다. 이런 소급수는 실제로 1720년에 시행되었다고 하였다. 평지수는 이희지가 언문(諺文)으로 세자를 무고하고 헐뜯는 말로 가사(歌詞)를 지어 궁중에 유입시키고, 또 숙종의 명령을 자신들이 꾸며서 세자를 폐위시키려 하였다는 것이다(『경종실록』 2년 3월 27일).

한편 이와 관련된 국문(鞫問) 과정에서 노론 측의 이 같은 구상에 당시 왕세제로 있던 연잉군(延礽君) 즉 후일의 영조가 관련되었다는 진술까지 등장하여, 왕세제를 곤혹스럽게 하였다.

변천

목호룡의 고변에 대한 조사는 소론 측 최석항(崔錫恒)이 주관하였으며, 이삼(李森)이 포도대장으로, 김일경이 의금부 당상으로 참여하였다. 고변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당사자인 김용택·이천기는 물론이고 노론 측 4대신이라 불리는 김창집(金昌集)·이이명(李頤命)·이건명(李健命)·조태채(趙泰采)의 이름이 거론되면서 모두 죽임을 당하였다. 그 외에도 약 170여 명 이상이 처형되거나 유배되었다. 이를 삼수옥(三手獄) 또는 임인옥사(壬寅獄事)라고 하며, 국문 과정에서 작성된 것이 삼수역안(三手逆案)이다. 임인옥사와 전년도에 발생한 신축옥사(辛丑獄事)를 합해서 신임옥사(辛壬獄事)라 부른다.

임인옥사 이후 소론들의 정국 주도가 이어졌다. 그러나 경종이 승하하고 영조가 왕위에 오른 뒤, 영조는 신임옥사와 관련된 노론 사대신을 순차적으로 신원하거나 관련자들을 신원시키면서 삼수옥이 무고임을 밝히려고 하였다. 영조는 1740년(영조 16) 경신처분(庚申處分)을 통해서 노론 사대신을 모두 신원하였고, 1741년에 임인옥사과 관련된 옥안을 모두 소각하면서 임인옥사를 소론에 의한 무고로 판정하였다.

참고문헌

  • 정만조, 「영조대 중반의 정국과 탕평책의 재정립: 소론 탕평에서 노론 탕평으로의 전환」, 『역사학보』111, 1986.
  • 정만조, 「영조대 초반의 탕평책과 탕평파의 활동: 탕평 기반의 성립에 이르기까지」, 『진단학보』56,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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