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事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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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및 조선시대에 국가가 새로운 제도를 시행 또는 확립하기 위하여 구체적으로 규정한 시행 세칙.

개설

국가의 중앙 기관부터 지방 기관, 기타 군사 기관 등이 구체적인 일을 시행할 경우에는 반드시 해당 일에 대한 세칙이 필요하였다. 사목(事目)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거나 어떠한 과업을 이루기 위해 그와 관련된 원칙, 사업의 목적, 이루려 하는 구체적인 내용 등 다양한 조항들을 조목조목 열거한 시행 세칙으로, 구속력을 갖고 있었다. 사목은 국가의 통치 행위와 관련된 조항부터 하부의 시행 세칙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국가가 설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목은 때때로 강제적인 법률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내용 및 특징

사목은 국가의 행정력을 동원하여 추진해야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으며, 그 제정된 목적과 추진하려는 일의 성격이 다양하였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규정할 수 없다. 조선의 태조가 이전의 정령과 법제의 장단점 및 변천되어온 내력의 사목을 상세히 기록하여 아뢰도록 한 것으로 미루어볼 때, 고려시대에도 이미 사목의 형태가 갖추어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사목은 몇 개조로 이루어진 조항이 중심 내용을 이루고 있으며, 조항을 지키지 않았을 때 받는 처벌이나 왕의 지시와 함께 사목을 작성하게 된 과정이 첨부되는 경우도 있다.

사목의 종류는 추진하려는 제도나 사업의 목적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현실적인 필요에 의하여 사목을 신설하거나 혹은 개정 요구에 따라 작성된 것도 있으며, 시행 과정에서 과거에 제정된 절목을 참조하거나 상황 변화에 따라 미진한 것을 보완하고 추가한 것도 있다. 대부분 이런 요인들이 혼합되어 새로운 조항들이 추가 또는 개정된 사목의 형태로 제시되었다. 이들 사목들은 해당 관청의 요구, 혹은 건의가 있거나 왕의 명령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기존의 권리를 인정받기 위하여 신청한 것에 대한 조치로서 이루어진 것도 있었다.

우선 현실적인 필요에 의하여 특정한 국가사업을 추진하기 위하여 제정한 사목을 살펴보면, 국가의 토지를 측량하여 국가의 조세를 거두기 위한 기초 사업으로 추진하였던 양전사목(量田事目), 호구(戶口) 파악을 위한 호적사목(戶籍事目) 및 연분사목(年分事目), 오가통사목(五家統事目) 등이 있다. 이들 사업은 일정 기간을 주기로 시행되었으므로 사목의 내용이 조금씩 달라지기도 했으며, 때로는 새로운 사목으로 바뀌기도 했다.

사회의 변화 혹은 자연재해 등과 관련하여 가변적인 상황이 국가 운영에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되자, 그에 대하여 현실적으로 대처할 필요성으로 제정된 사목들도 있다. 진휼사목(賑恤事目), 상평청사목(常平廳事目), 내사노비감공급대사목(內寺奴婢減貢給代事目) 등과 같은 것은 국가적인 측면에서 추진하기 위해 제정된 것들이다. 1752년(영조 28)에 작성된 균역청사목(均役廳事目)은 균역법의 시행 세칙으로, 조선후기 군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역변통절목(良役變通節目) 같은 이전 단계의 논의와 조치라는 시험적인 결과를 토대로 전국적으로 동시에 적용되었다.

그 외에 시행 과정을 살펴보면서 상황 변화에 따라 미진한 것을 보완하고 추진하기 위한 사목이 있다. 기본적으로는 특정한 국가적 사업을 이룩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지역과 시기를 달리하면서 동일한 사업에 대한 사목이 따로 작성되어 시행되는 것도 있다. 일부 지역에서 사업의 추이를 봐가면서 지역을 확대하기 위한 것으로, 세제의 개혁을 위해 시행하였던 대동법 시행에 따른 대동사목(大同事目)을 들 수 있다.

대동사목의 종류로는 1654년(효종 5)의 충청도대동사목(忠淸道大同事目), 1663년(현종 4)의 전남도대동사목(全南道大同事目) 및 영남대동사목이 있다. 이 사목들은 대동법의 제반 원칙을 제정한 것으로 공납제의 모순과 그로 인한 폐해를 제거하고 아울러 면세전의 증대로 세수(歲收)가 줄어들고, 영세 소작농의 증가로 호역(戶役)이 위축되는 것을 재정적으로 극복하고자 제정·시행되었다.

또한 국가에서 필요한 전적(典籍), 물품 등을 마련하기 위한 사목도 있다. 즉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제작하기 위한 목적 또는 국가가 필요한 것들을 수집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루어진 사목이다. 1645년(인조 23) 종부시에서 『선원록』에 관계된 여러 가지 응행절목(應行節目)을 수정한 후에 시행 규칙을 만들었다. 이는 『선원록』을 제작하여 봉안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적인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것이 있는 반면, 국가가 일정한 조건을 요구하거나 혹은 필요한 일을 추진하기 위하여 국민들에게 요구하거나 혹은 금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사목도 있다. 그러한 목적으로 제정한 사목 중 대표적인 것으로 금문사목(禁紋事目)이 있다. 금문사목은 1746년(영조 22)과 1787년(정조 11)에 사치 풍조가 만연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든 사목으로, 중국과의 무역에서 문주(紋紬)가 많이 수입되자 문주를 무역하는 것을 금지하는 전교(傳敎)에 근거하여 만든 것이다. 가체신금사목(加髢申禁事目)은 1788년(정조 12)에 가체를 금할 것을 규정한 사목이다.

필요한 조건을 갖추기 위한 사목으로는 송전(松田)의 남벌 및 도벌을 방지하고 산림을 잘 가꾸어 보호하기 위한 제도송금사목(諸道松禁事目)을 들 수 있다. 한편 국가가 비상사태, 특히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하여 작성하는 사목도 있는데, 인조대에 작성된 역적취포사목(逆賊就捕事目), 경상도방어사사목(慶尙道防禦使事目), 공청도조방장사목(公淸道助防長事目)이 대표적인 예로서, 인조 때 유탁(柳濯) 등의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하여 작성된 것들이다.

권리를 인정받기 위하여 신청자에 대한 조치로서 이루어진 사목으로는 충훈부계하사목(忠勳府啓下事目)을 들 수 있는데, 이는 공신 자손 개인의 군보(軍保), 천역(賤役), 연호잡역(烟戶雜役) 등 제반 역을 면제해주는 정도의 역할밖에 하지 못하여 완문에 가까우며 기존 사목과 구분될 정도의 성격을 지닌다. 사목 중에는 금지 규정이 포함된 것들이 많다. 사목의 처벌 규정만을 뽑아서 수교(受敎)와 연계시킨 경우도 있는데, 순조대 작성된 수교정례(受敎定例)는 균역사목(均役事目)·조운사목(漕運事目)·금송사목(禁松事目)·신반사목(新頒事目)·금주사목(禁酒事目)에서 처벌 규정만을 뽑아 정리한 것이다. 이는 사목과 국가의 법령의 관련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가가 해당 지역의 구체적인 사정이 어떠한지를 파악하기 위한 사목도 있다. 팔도어사(八道御史) 재거사목(齎去事目)은 각 지역의 문제들을 세세하게 파악한 뒤 해당 지역에 맞게 구체적인 운영 모습을 살펴보도록 암행어사를 파견하면서 내려보낸 사목이다. 이는 국가가 정책의 목표를 가지고 그것을 이끌어가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구체적인 내용들이 어떻게 시행되고 있는가를 파악하기 위한 목적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에 대해 암행어사는 서계(書啓)와 별단(別單)을 작성하여 보고하여야 했다.

의의

사목들이 시행되었다고 하더라도 모든 사목이 목적을 달성하였다고는 볼 수 없다. 사업의 지속성과 관련하여 단기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사목도 있었으며, 주기적·지속적으로 시행하여야 하는 것도 있었다. 사목은 시행 과정에서 그것이 제대로 추진되었는가의 여부에 따라 유효하기도 하였으며, 사문화(死文化)되기도 하였다. 사목은 절목과 함께 국가의 주요한 정책 혹은 사업을 시행하기 위하여 절차와 세칙들을 규정한 것으로 국가 운영의 방향을 알 수 있으며, 아울러 시대적인 정치·사회·문화·교육·군사 등에 관한 제반 사항을 살피는 데 이용할 수 있다.

참고문헌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계하사목(啓下事目)』
  • 『팔도어사재거사목(八道御史齎去事目)』
  • 『호패사목(號牌事目)』
  • 『대동사목(大同事目)』
  • 『금문사목(禁紋事目)』
  • 『가체신금사목(加髢申禁事目)』
  • 김인걸 외, 『비변사등록사목·절목류해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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