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포(朴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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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400년(정종 2) = ?]. 조선 초기 태조(太祖)~정종(定宗) 때의 무신. 중추원(中樞院)지사(知事)의흥삼군부(義興三軍府) 우군동지절제사(右軍同知節制使)를 지냈다. 봉작(封爵)은 죽성군(竹城君)이다.

태조~정종 시대 활동

1392년(태조 1) 8월에 조선 건국에 대장군(大將軍)으로서 참여하였고, 이 공을 인정받아 개국공신(開國功臣) 2등에 책봉되었다.[『태조실록(太祖實錄)』태조 1년 8월 20일] 1393년(태조 2) 겸 사헌부(司憲府) 중승(中丞)이 되었다.[『태조실록』태조 2년 6월 22일] 1396년(태조 5) 3월 중추원의 8인으로 하여금 서북면의 수령(守令)을 겸하게 하였는데, 그는 이때 황주(黃州)를 담당하였다.[『태조실록』태조 5년 3월 7일] 1398년(태조 7) 8월 <제1차 왕자의 난>, 일명 정도전의 난이 발생하였을 때 공을 세워 죽성군에 봉해졌으며, 그 해 9월 중주원 지사의흥삼군부 우군동지절제사가 되었다.[『태조실록』태조 7년 8월 26일, 태조 7년 9월 5일] 또한 논공(論功)에서 정사이등공신(定社二等功臣)의 칭호를 받았으나, 이무(李茂)가 정사일등공신(定社一等功臣)에 책봉된 것을 비방하다가 그 해 9월에 죽주(竹州)로 유배되었다가 얼마 뒤에 소환되었다.[『태조실록』태조 7년 9월 12일, 태조 7년 10월 1일]

1400년(정종 2) 1월 회안군(懷安君)이방간(李芳幹)이 난을 일으킨 <제2차 왕자의 난>이 발생하였는데, 이때 그는 이방간과 뜻을 같이 하다가 결국 체포되었다.[『정종실록(定宗實錄)』정종 2년 2월 1일, 정종 2년 2월 1일, 정종 2년 10월 6일] 이어 그는 삭직 및 공신녹권(功臣錄券)을 회수당하였고 함주(咸州)로 유배를 갔다가 그 해 2월 25일 복주(伏誅)되었다.[『정종실록』정종 2년 2월 4일, 정종 2년 2월 25일]

참고문헌

  • 『태조실록(太祖實錄)』
  • 『정종실록(定宗實錄)』
  • 『태종실록(太宗實錄)』
  • 『국조보감(國朝寶鑑)』
  • 『동각잡기(東閣雜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