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형(朴師亨)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총론

[1712년(숙종 38)~1782년(정조 6) = 71세]. 조선 후기 영조~정조 때 활동한 문신·학자. 행직(行職)은 성천부사(成川府使)이다. 자는 성행(聖行)이고, 본관은 반남(潘南)이다. 증조부는 이조 판서(判書)박세당(朴世堂)이고, 조부는 지평(持平)박태유(朴泰維)이다. 아버지는 금산군수(錦山郡守)박필기(朴弼基)이며, 어머니 풍천임씨(豊川任氏)는 임진영(任震英)의 딸이다.

영조·정조 시대 활동

1750년(영조 26) 1월 당시 우의정(右議政)정우량(鄭羽良)의 천거로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 세마(洗馬)가 되었고, 1752년(영조 28) 부솔(副率)로 전보되었다. 1757년(영조 33) 9월 음 가주서(蔭假注書)가 되었다가 1758년(영조 34) 장악원(掌樂院)주부(主簿)가 되었다. 그 뒤 장례원(掌隷院) 사평(司評)·사복시(司僕寺)주부(主簿)를 역임하다가 개령현감(開寧縣監)으로 나갔다. 1769년(영조 45) 9월 지평이 되고, 1770년(영조 46) 12월 정언(正言)으로 임명되었으나, 그 다음해 2월 패초(牌招)를 어겼다는 이유로써 북관(北關)으로 귀양 갔다. 그 후 성천부사(成川府使)로 복귀하였다.

계방(桂坊)에서 『주자대전(朱子大全)』과 『주자어류(朱子語類)』의 장구(章句)를 정하고 의심스런 뜻을 해석하며 그 언독(諺讀)을 기록하는데 참여하였다. 1782년(정조 6)에 세상을 떠나니 나이는 71세이다. 저서로는 『자경속편(自警續編)』 6책과 『박사형유고(朴師亨遺稿)』가 있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일성록(日省錄)』
  • 『해사일기(海槎日記)』
  • 『홍재전서(弘齋全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