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관(北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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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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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북관 |
한글표제 | 북관 |
한자표제 | 北關 |
상위어 | 관방(關防) |
동의어 | 관북(關北) |
관련어 | 남관(南關), 마천령(摩天嶺) |
분야 | 정치/군사·국방/편제 |
유형 | 집단·기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조선 |
집필자 | 김순남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북관(北關)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광해군일기』 2년 11월 18일, 『선조수정실록』 25년 6월 1일 |
함경북도 지방을 이르는 말.
개설
함경도를 군사상 구분하여 마천령을 경계로 그 북쪽은 북관, 그 남쪽은 남관(南關)이라 한다. 길주로부터 그 이북의 명천·경성·부령·종성·무산·회령·온성·경원·경흥에 이르는 10개 고을이 포함된다. 동쪽 끝은 단천군 광천면 마천령, 서쪽 끝은 장진군 동문면 아득령, 남쪽 끝은 안변군 신고산면 삼방리, 북쪽 끝은 혜산군 보천면 백두산이다. 동쪽은 동해에 면하며 북동쪽은 함경북도에, 서쪽은 평안남도·평안북도에, 남쪽은 강원·황해도에, 북쪽은 압록강을 국경으로 중국 지린성[吉林省]과 마주한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조직 및 역할
북관에 소속된 관(官)으로는 회령(會寧)·부령(富寧) 등의 부(府)에 소속된 16보(堡)가 있다. 간성(杆城)은 북관과 영동(嶺東)의 요해처였다. 1610년(광해군 2)에 장만(張晩)이 오랫동안 북관에 있었다(『광해군일기』 2년 11월 18일).
변천
1592년(선조 25) 6월 선조가 파천을 의논할 때 북관은 한 가닥 길밖에 없어 궁하게 될 경우 오랑캐 지역 외에는 갈 만한 곳이 없으니 평안도 의주로 진주해야 한다고 했다(『선조수정실록』 25년 6월 1일). 경기에서 북관 직로(直路)에는 진을 설치한 곳이 없었다. 철원의 풍전역(豊田驛)은 북관의 첫길이었다.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