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호묘(文祜廟)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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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문호묘 |
한글표제 | 문호묘 |
한자표제 | 文祜廟 |
관련어 | 묘사(廟祠), 창의궁(彰義宮), 효명세자(孝明世子) |
분야 | 왕실/왕실건축/능·원·묘 |
유형 | 건축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후기 |
집필자 | 이욱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문호묘(文祜廟)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헌종실록』 1년 5월 19일 |
효명세자(孝明世子)의 사당.
개설
효명세자는 1809년(순조 9) 8월 9일에 순조와 순원왕후(純元王后) 김씨(金氏) 사이에서 첫 아들로 태어났다. 1812년(순조 12) 6월 2일에 왕세자에 책봉되었으며, 1817년(순조 17)에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1819년(순조 19)에 관례를 치르고 조만영(趙萬永)의 딸을 세자빈으로 맞이하였다. 1827년(순조 27) 2월부터 순조의 대리로 국정을 다스렸지만, 4년 후인 1830년(순조 30) 5월 6일에 병으로 사망하였다. 이에 문호묘를 건립하여 그의 신주를 모셨다. 그러나 1834년(순조 34)에 헌종이 순조의 왕위를 계승하면서 생부인 효명세자를 왕으로 추숭하였다. 이에 따라 1835년(헌종 1) 문호묘는 폐지되었다.
위치 및 용도
문호묘는 한성부 북부 순화방에 있었던 창의궁(彰義宮) 내에 건립되었다. 창의궁은 영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인 연잉군(延礽君) 때 살았던 옛집이었다. 영조가 왕세제로 책봉된 된 후 이곳은 본궁으로 보호되었고, 영조대에 효장세자의 사당인 효장묘(孝章廟)와 의소세손의 사당인 의소묘(懿昭廟)가 이곳에 건립되었다. 정조가 즉위하면서 효장세자를 진종(眞宗)으로 추존함에 따라 효장묘는 폐지되었는데 그 자리에 의소세손의 신주를 봉안하였다. 문호묘는 창의궁 내 의소묘의 자리에 세워졌다. 효명세자의 신주는 상례를 모두 마친 1832년(순조 32) 7월 7일에 봉안되었다. 현재 문호묘의 행정구획상 위치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통의동 35번지이다.
변천 및 현황
문호묘에서는 춘분, 추분, 하지, 동지의 사중삭(四仲朔) 제사와 정조, 한식, 단오, 추석의 사명일(四名日) 제사를 거행하였다. 사명일에는 효명세자의 무덤인 연경묘(延慶墓)에서도 제사를 거행하였고, 기신제(忌晨祭)는 연경묘에서만 거행하였다. 그 외 삭망 분향과 삭망제가 문호묘에서 있었다. 1834년(순조 34) 11월에 헌종이 즉위하면서 생부인 효명세자를 익종(翼宗)으로 추존하였다. 그리하여 1835년(헌종 1) 5월 19에 익종으로 추숭한 신주를 문호묘에서 제주(題主)하여 효화전(孝和殿)에 봉안함에 따라 문호묘는 폐지되었다(『헌종실록』 1년 5월 19일). 익종은 1837년(헌종 3)년 1월 7일에 순조와 함께 종묘에 부묘(祔廟)되었다.
형태
1831년(순조 31) 5월 말에 문호묘 건립을 시행할 영건청(營建廳)을 설치하고 7월 9일에 공사를 시작하여 8월 30일에 마쳤다. 주요 건물은 정당(正堂)이 12칸, 이안청(移安廳)이 3칸, 내신문(內神門) 3칸, 제기고(祭器庫) 2칸, 중삼문(中三門) 3칸, 어재실(御齋室) 6칸, 소재실(小齋室) 6칸, 내관입접처(內官入接處) 4칸, 수복입접처(守僕入接處) 3칸반, 향대청(香大廳) 6칸, 전사청(典祀廳) 6칸, 제관방(祭官房) 7칸반, 정삼문(正三門) 3칸, 외대문(外大門) 2칸, 동서행각(東西行閣) 등으로 이루어졌다.
참고문헌
- 『순조익종부묘도감의궤(純祖翼宗祔廟都監儀軌)』
- 『효명세자입묘도감의궤(孝明世子入廟都監儀軌)』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