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흘역(無訖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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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도 지역의 역도 중 하나인 성현도에 속한 역.

개설

무흘역(無訖驛)은 고려시대에는 김해의 덕산역(德山驛)을 중심으로 한 김주도(金州道)에 소속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전국적인 역도-역로 조직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성현도(省峴道)의 속역으로 편제되었다. 그 뒤 세조대에는 경상좌도의 역도(驛道)인 성현도에 소속되었으며, 이후 갑오개혁 때까지 존속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고려사(高麗史)』 「병지(兵志)」 참역(站驛) 조에 따르면, 고려시대에는 김주도에 속한 31개 속역 가운데 하나였다. 이때의 명칭은 무을이역(無乙伊驛)이었으며, 밀성(密城) 즉 밀양 지역에 위치하였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고려의 역제가 22역도-525속역 체제로 정비된 995년(고려 성종 14)에서 1136년(고려 인종 14) 사이에 김주도에 소속된 것으로 보인다.

조직 및 역할

조선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 경상도 밀양도호부조에 따르면, 당시 무흘역에는 역리(驛吏) 363명, 역노(驛奴) 13명과 중마 2필, 복마 6필 등 8필의 역마가 배속되어 있었다.

변천

조선 건국 후 전국적으로 역로를 재조직하였는데,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무흘역은 성현도에 소속되어 성현도 역승(驛丞)의 통제를 받았다. 그 뒤 1457년(세조 3)의 역승 폐지 조치로 찰방의 순시 범위가 넓어지면서 역도에 소속된 역의 수가 많고 역 사이의 거리가 멀어 역로가 쇠퇴하는 등 각종 폐단이 발생하자, 1462년(세조 8)에 대대적으로 역로를 개편하였다. 그 결과 무흘역은 경상좌도의 역도인 성현도에 소속되어 성현도 찰방(察訪)의 지휘를 받게 되었다. 성종대에 『경국대전(經國大典)』이 반포되면서 확정된 조선시대 전기의 역도 체제에서도 무흘역은 별다른 변화 없이 성현도의 속역으로 편제되었다. 이후 조선시대 후기까지 존속하다가, 1896년(고종 33)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폐지되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무흘역의 위치는 밀양도호부 관아 동쪽 30리 지점이었으며, 북쪽의 용가역과는 35리, 서쪽의 금동역과는 20리 거리에 있었다고 한다.

한편 무흘역의 명칭은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고려시대에는 무을이역이었고,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무흘이역(無訖伊驛), 무걸이역(無乞伊驛), 무흘역 등으로 불렸다. 『세종실록』「지리지」 경상도 조에는 성현도의 속역으로 무흘이역이 등장한다. 그에 비해 같은 책 경상도 경주 밀양도호부 조에는 무흘역을 예전에는 무걸이역으로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들을 고려하면, 고려시대의 무을이역이 조선 세종대에 역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무흘이역을 거쳐 무흘역으로 개칭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무걸이역은 무을이역의 오기에서 비롯되었거나, 무을이역이 무흘이역 또는 무흘역으로 개칭되는 과정에서 잠시 사용된 명칭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조병로, 『한국근세 역제사연구』, 국학자료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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