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木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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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목재를 이용하여 집을 짓거나 다양한 물건을 만드는 기술자.

개설

목수(木手)는 건축에서 나무를 잘 다루는 기술자이다. 이들은 부역 체계에 따라 관아에 등록되어 있었고, 수리도감(修理都監)이나 선공감(繕工監)에 배속되어 있었다.

담당 직무

목수는 목조 건축에서 나무를 다루는 기술자이다. 이들은 작업 공정의 전 과정에 따른 제반 역할을 수행하였다. 예컨대 재목의 벌채, 운반, 제작 등 전 과정의 일을 담당하였다. 따라서 그 기능이 분화되었는데 도편수[都邊首]는 각종 공정 과정의 전반을 책임지며, 부편수[副邊首]는 그를 보좌하였다. 그리고 지붕의 기울기를 보는 정현편수[正絃邊首], 처마에 대는 나무를 맞추는 공도편수[工蹈邊首], 서까래를 거는 연목편수[椽木邊首], 대장장이인 야장편수[冶匠邊首], 집을 손질하고 단장하는 수자편수 등으로 그 기능이 분화되어갔다. 태종대에 숭례문 안의 무너진 행랑 수리를 논의하는 가운데 선공감에는 목수 외에도 석수(石手)·노야장(爐冶匠) 등이 등록되어 있었음이 확인된다(『태종실록』 15년 7월 17일).

변천

태종대에는 선공감에 명하여 목수들의 등록부[籍]를 만들도록 하였다(『태종실록』 15년 4월 10일). 세종대에 숭례문을 보수할 때, 대목(大木)에게는 정5품, 우변목수와 좌변목수에게는 종7품의 품계가 주어지기도 하였다. 세조대에는 선공감 목수가 1백 명이며, 체아 6명 가운데 전사(典事) 1명, 부전사(副典事) 1명, 급사(給事) 2명, 부급사(副給事) 2명을 임명한다고 하였다(『세조실록』 6년 8월 1일).

목수는 배를 만드는 작업에도 동원되었는데, 호조(戶曹)에서 부족한 참선(站船)을 만들기 위해 목수를 동원하였다. 즉 선장(船匠)·목수는 전례에 의거하여 경강, 즉 한강 가에 거주하는 백성 가운데 선발하되, 경기도·강원도·충청도의 강가에 거주하는 사람 1백 명은 여러 고을의 군자미(軍資米)를 사용하여 공급하고 역사(役使)시키며, 조역군(助役軍) 2백 명은 충청도·강원도의 번상의 차례가 되어 근무 중에 있는 선군인 당령선군(當領船軍) 중에서 부근에 거주하는 사람으로서 방어의 긴급한 정도에 따라서 추출하여 뽑아 정하였다(『세조실록』 8년 2월 30일). 연산군대에는 중외(中外)의 목수를 찾아내 수리도감에 배속했다는 기록이 있다(『연산군일기』 10년 6월 21일).

참고문헌

  • 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소, 『한국민속대관』, 고려대학교출판부,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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