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일분수(理一分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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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관철하는 보편적 원리와 개별적인 현상 속에 내재하는 특수 원리 사이에 일치성이 있다고 설명하는 성리학의 이론.

개설

리일분수(理一分殊)란 리(理)는 하나(一)이나 그 분(分)은 다름(殊)을 말한다. ‘리는 하나’라는 것은 형이상적 본체(리)의 통일성을 말하는 것이고, ‘분이 다르다’는 것은 현상적 세계의 다양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성리학자들이 리일분수론을 전개하는 데 있어 ‘리가 하나이다’는 측면을 중시하는 경우도 있고, ‘분은 다르다’는 측면을 중시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모두는 세계의 통일성과 다양성을 아울러 조망하는 것이다.

내용 및 특징

리일분수는 정이(程頤)가 처음 윤리적 측면에서 제시한 명제이지만 자세한 설명을 가하지 않았다. 이 명제는 주희(朱熹)가 윤리적 측면에 한정하지 않고, 존재론과 우주론을 리와 기의 개념으로 설명하면서 이 명제를 제시한 뒤부터 성리학의 핵심 명제가 되었다. 즉 궁극적 실체의 통일성[理一]과 현상적 개체의 다양성[分殊]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이 되었다.

주희는 리인 태극은 우주의 보편자이자 모든 만물의 존재 근거로서 존재한다. 모든 만물은 그 태극을 품부받아 만물 자체의 본질로 삼으니, 태극의 일부분이 아니라 태극과 동일한 내용을 가진 것으로서 의미상 상호 일치한다. 즉 세계 만물 모두를 관장하는 보편적인 법칙으로써의 태극이 현상의 개별적 존재로 분화되어 특수 법칙이 된다. 현상 개개의 사물은 동일한 법칙으로부터 자신의 법칙을 부여받아 그 본질적인 측면에서는 동일성을 유지하지만, 현상적인 측면에서는 기 곧 형질 때문에 차별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주희는 태극을 전체적이고 본질적인 측면과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측면으로 구분하여 말하는 바, 전자가 통체일태극(統體一太極)이 되며, 후자가 각구일태극(各具一太極)이 된다. 전자인 통체일태극은 리일이고 후자인 각구일태극은 분수이다. 태극의 두 측면을 제시한 이론은 궁극적으로 우주의 본체와 만물의 본질이 상이하지 않고 동일하다는 관계를 천명한 것이다. 성리학자들은 리일분수론을 전개하는 데 있어 ‘리가 하나이다’는 측면을 중시하는 경우도 있고, ‘분은 다르다’는 측면을 중시하는 경우도 있으나, 그들 모두는 세계의 통일성과 다양성을 아울러 조망하려 하였다.

이황(李滉)은 「정성서(定性書)」에 나오는 정성(定性)의 방법을 리일분수로 언급하기도 하고, 리일의 가운데 기품이 만 가지로 같지 않은 것이 있으니 이것이 분수라고 하여 리일과 분수를 상함적 차원에서 이해하고 있다. 이이(李珥)는 리는 본래 하나라고 설명한다. 보편자로서의 리가 기의 고르지 않은 양상 때문에 분수가 생긴다고 하였다. 분수로서의 개별적인 리는 본질적 차원에서는 동일하다고 피력하였다. 기정진(奇正鎭)은 리일원적 차원에서 "분은 임시로 배정된 것이 아니다. 이것이 리의 본연이다."라고 하여, 리의 분은 리가 지닌 본래적인 본연의 한 모습으로 파악하였다. 더욱이 분이란 리일 가운데 작은 조리여서 리와 분 사이에는 층절이 있을 수 없고 또한 분은 리의 상대가 아니라고 하여, 기존의 리일분수론에서 벗어나 리분일원설(理分一原說)로 나아갔다.

변천

세종대에 차자(次子)의 사묘(私廟)를 세우는 문제와 이실(二室)을 함께 부(祔)하는 예(禮)를 의논하게 되었다. 이때 변계량(卞季良)은 의례(儀禮)의 제법(制法)은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차등이 있지만, 이는 천리(天理)의 본연(本然)에서 나온 것이고 사사로운 지혜나 사설(邪說)로서 마음대로 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주희도 ‘리는 하나이고 구분은 다르다[理一分殊]’는 측면에서 예의 차등을 말하면서 하나라는 리를 말했다는 것이다. 그는 묘제(廟制) 자체에 강쇄(降殺)가 있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는 예법도 같다는 의견을 전개하기에 이르렀다(『세종실록』 10년 9월 14일).

중종대에 밤중에 경연을 펼치는 야대(夜對)에서 『근사록』을 진강하는데, 참찬관김안국 등이 ‘리는 하나인데 분이 다르고[理一分殊] 도리는 하나로 관철되었다[道理一貫]’는 것과, 학문은 순서를 넘어서서는 안 되고 모든 일에는 지성(至誠)이 중요하다는 것 등을 극력 논하고, 김안국이 또 원통하거나 민망한 일을 자세히 살피기를 순순히 끊이지 않고 아뢰니, 상이 모두 아름답게 여겨 받아들이고 이어 술을 내린 뒤에 파하였다(『중종실록』 11년 11월 7일).

영조대에 신하들의 삭출 문제에 대해 소회를 전달한 사직(司直)이재(李縡)의 상소에는 "부자(父子) 사이는 은애(恩愛)를 위주로 삼고 군신(君臣) 사이는 의리(義理)를 위주로 삼기 때문에 혹 범간(犯諫)함은 없어도 숨김이 있기도 하고 범간함은 있어도 숨김이 없기도 하며, 나아가 봉양함에 있어서도 유방(有方)과 무방(無方)의 구별이 있는 것입니다. …… 자식이 아무리 패악(悖惡)한들 어찌 친상(親喪)에 달려가지 않는 자가 있겠으며 대상(大祥)·소상(小祥)에 참여하지 않는 자가 있겠습니까? 여기서 그 리는 하나이지만 분은 다른 실상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매양 아들의 도리를 신하에게 책망하고 계시니, 이대로 따라가면 장차 순종함만 있고 어김이 없어서 따르는 자만 있고 떠나는 자는 없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올바른 이치이겠습니까?"라고 하여 윤리적 도리를 주장하였다(『영조실록』 8년 9월 15일).

정조대에 소대(召對)를 행하여 『예기』를 진강(進講)하였다. 정조는 "예(禮)는 인정에 따른 것으로서 더하거나 줄이지 못하면 예가 아닌 것이다. 성인(聖人)은 몸이 법도가 되고 말이 율(律)이 되는 것이기에 말을 하면 자연히 예에 맞게 되는 것이다. 만일 능히 본원(本源)의 위에 있어서 공부를 하여 리일분수에 있어서 밝아지면 예는 그 속에 있게 되는 것이다."(『정조실록』 즉위년 4월 29일)라고 하였다. 또한 한원진(韓元震)을 추증하고 시호를 내리기를 바라는 경외 유생의 상소에서는 한원진의 인물성(人物性)에 대한 이론을 논하며 ‘분수’와 ‘분수의 분수’를 제시하여 성리학적 이론을 피력하였다(『정조실록』 11년 4월 5일).

순조대에는 장재의 「서명」 내용을 언급할 적에 리일분수를 말하고(『순조실록』 1년 12월 22일), 헌종대에는 국모에게 충성하기를 바라는 것을 부모에게 견주며 리일분수를 말하였다(『헌종실록』 13년 8월 25일).

참고문헌

  • 『퇴계전서(退溪全書)』
  • 『율곡전서(栗谷全書)』
  • 윤사순, 『한국유학사』, 지식산업사, 2012.
  • 현상윤 저, 이형성 교주, 『현상윤의 조선유학사』, 심산, 2010.
  • 유교사전편찬위원회, 『유교대사전』, 박영사,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