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사(耒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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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적전(籍田)에서 친경례(親耕禮)를 행할 때, 밭을 가는 데 사용하던 청색 쟁기.

개설

조선시대에는 왕과, 신하 중에서 선발된 종경제신(從耕諸臣)이 직접 적전을 경작하며 농사일을 권장하고 국가 제사에 사용할 곡식을 기르는 정성을 보였는데, 이를 친경례라고 한다. 이 의식에서 왕과 신하들은 각각 품계에 따라 차례로 쟁기를 5차례, 7차례, 9차례 밀었는데, 뇌사는 이때 사용한 쟁기를 말한다.

연원 및 변천

뇌사는 중국 고대 전설상의 제왕이자 농업의 신인 신농씨(神農氏)가 만들었다고 전한다. 나무를 깎아 땅을 일구는 ‘사(耜)’를 만들고, 나무를 휘어 ‘사’의 손잡이인 ‘뢰(耒)’를 만들었다고 한다. 친경례에서 사용하는 뇌사는 의례용이므로 농사를 지을 때 사용하는 실제 뇌사보다는 가볍게 만들었으며, 청색으로 칠을 하였다. 이는 오행(五行)의 원리에 따라 청색이 봄과 동쪽을 상징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철(鐵)이 사용되면서 땅에 닿는 사의 날은 철로 씌웠다.

형태

‘사’는 흙을 일으키는 부분으로 나무를 깎아 만들었으며, 자루에 해당하는 ‘뢰’는 나무를 구부려서 만들었다. 『국조속오례의서례(國朝續五禮儀序例)』에서는 중국의 『문헌통고(文獻通考)』를 인용하여, ‘뢰’와 이를 담아 두는 집은 청색으로 장식하여 청색 보자기로 덮어 두고, 쇠로 날을 만들어 ‘사’의 끝에 끼운다고 하였다.

뇌사는 의례를 거행하기 전에 봉상시(奉常寺)의 담당관이 해당 관청의 관원을 거느리고 준비해 두었다가, 행사 당일에 경근거(耕根車)에 실어 적전까지 날랐다. 왕이 사용하는 뇌사는 다른 것과 구분하여 어뢰사(御耒耜)라고 하였다(『성종실록』 6년 1월 14일).

참고문헌

  • 『국조속오례의서례(國朝續五禮儀序例)』
  • 『춘관통고(春官通考)』
  • 『주역(周易)』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