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근거(耕根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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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왕이 몸소 농사를 짓는 친경례(親耕禮)를 행하기 위해 동적전(東籍田)에 행차할 때, 여러 농기구를 싣고 나르는 데 사용하던 수레.

개설

‘농여(農輿)’ 또는 ‘망거(芒車)’라고도 한다. 왕이 적전에서 친히 농사를 지을 때 사용하는 쟁기인 어뢰사(御耒耜) 등의 농기구를 운반하는 데 사용하였다. 수레는 선공감(繕工監)에서 제작하였으며, 수레를 끄는 사람은 병조(兵曹)에서 차출하였다. 경근거를 끄는 견부(牽夫)는 총 40명으로, 모두 푸른색 옷[靑衣]을 입고 푸른색 두건[靑巾]을 착용하였다. 경근거는 친경례를 행하기 위해 거둥하는 거가(車駕) 행렬에서 왕이 타는 대가(大駕) 앞에 위치하였다.

연원 및 변천

『문헌통고(文獻通考)』에 따르면, 경근거는 중국 한(漢)나라 때는 부거(副車)에 쟁기와 보습을 담은 통인 복(箙)을 실었고, 황제가 친경 의식을 거행할 때에도 탔다고 한다. 진(晉)나라 때는 4마리 말로 하여금 수레를 끌게 하였는데, 한나라 때와 마찬가지로 황제가 친경할 때 이를 탔으며, 쟁기와 보습은 수레 앞 가로나무인 식(軾) 위에 실었다. 수(隋)나라는 푸른색을 본바탕으로 하였기 때문에 쟁기와 보습을 푸른색 주머니에 담아 수레에 실었다. 당나라는 수나라의 제도를 따랐다.

이와 달리 조선시대에는 친경 의례에 필요한 농기구만을 경근거에 실었고, 왕이 직접 타지는 않았다(『세종실록』 오례 길례 의식 친향 선농의 거가 출궁). 푸른 두건을 머리에 두르고 푸른 옷을 입은 사람들이 대가 앞에 자리 잡고 친경하는 장소까지 끌고 갔다. 성종대에는 40명이 끌었으며(『성종실록』 6년 1월 14일), 영조대에는 20명이 끌었다고 한다.

형태

경근거는 덮개나 장식이 없는 수레로, 크기는 화거(火車)보다 약간 작았다. 수레 본체의 사면에는 구멍이 뚫린 작은 난간이 있는데, 검은색으로 칠하였다. 왕이 사용하는 어뢰사를 비롯하여 벼 종자를 담은 상자인 동륙상(穜稑箱) 등을 실은 뒤 푸른색 보자기로 덮었다. 수레를 끄는 손잡이에는 멍에를 만들고, 그 양끝은 푸른색 끈으로 묶어 끌 수 있게 하였다.

참고문헌

  • 『국조속오례의서례(國朝續五禮儀序例)』
  • 『춘관통고(春官通考)』
  • 『송서(宋書)』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