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악(內樂)
주요 정보 | |
---|---|
대표표제 | 내악 |
한글표제 | 내악 |
한자표제 | 內樂 |
관련어 | 내연(內宴), 무고(舞鼓), 선유락(船遊樂), 여기(女妓), 여악(女樂), 연향(宴饗), 포구락(抛毬樂) |
분야 | 문화/예술/음악 |
유형 | 의식·행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대한제국기 |
왕대 | 조선~대한제국기 |
집필자 | 이정희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내악(內樂) |
궁중 행사에 동원되어 재예를 펼쳤던 여기(女妓), 또는 이들이 공연했던 음악·노래·춤.
개설
내악(內樂)은 궁중과 관아의 행사에 불려가 악기·노래·춤을 공연했던 기녀를 가리키거나 그 공연물 자체를 의미하며, 광범위하게는 여악(女樂)이라고도 한다. 여악은 서울뿐 아니라 지방에서 활동하는 여기를 두루 포함하나, 내악은 궁궐에서만 공연하였다.
연원 및 변천
내연(內宴)이 그들의 주요 활동 무대였으므로 내악이라고 불렀다. 내악을 접했던 이들은 왕과 세자를 제외하고는 대다수 왕실과 관련된 여성들이었다. 대왕대비와 왕비를 중심으로 종친의 부인, 고위 관료의 부인 등이 내연에 참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악의 기반을 형성하였던 여기들은 1894년의 갑오경장 때 제도적으로 해방되었지만, 대한제국기까지 관습적으로 동원되어 기예를 선보였다.
절차 및 내용
내악 공연자들인 여기들은 서울 출신인 경기(京妓)와 지방 출신인 향기(鄕妓)로 구성되었다. 향기들은 궁중에 행사가 있을 경우에만 서울에 올라와 거주하다가 행사 직후 귀향하였다. 중앙 정부와 각 도의 감영, 각 읍의 관청에서 서로 공문을 주고받으며 인원을 조절하였다. 평안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많이 선발되었고, 연령층은 20대에서 30대 정도였다.
여기들은 평소 악기를 연주하고 무용을 할 때 부르는 노래인 창사(唱詞)를 노래하며 정재(呈才)를 춤추는 연습을 하였기 때문에 연주·노래·춤 세 영역에 모두 뛰어났다. 그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재능은 정재를 춤추는 것이었으니, 궁중 잔치의 주요 절차에 여러 종류의 무용을 번갈아 춤추며 솜씨를 뽐냈다. 궁중연향에 뽑혀 서울로 온 여기들은 장악원에서 다시 교육받았다.
궁중연향에서 공연되었던 종목은 30여 종이 넘으며, 무고(舞鼓)·선유락(船遊樂)·포구락(抛毬樂) 같은 유희적인 공연이 인기가 있었다. 연향 후 여기들에게는 상으로 무명·삼베 등의 옷감을 차등 지급 받았으며 드물지만 면천(免賤)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악학궤범(樂學軌範)』
-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
- 『순조무자진작의궤(純祖戊子進爵儀軌)』
- 『순조기축진찬의궤(純祖己丑進饌儀軌)』
- 『헌종무신진찬의궤(憲宗戊申進饌儀軌)』
- 『고종정축진작의궤(高宗丁丑進爵儀軌)』
- 『고종정해진작의궤(高宗丁亥進爵儀軌)』
- 『고종임진진찬의궤(高宗壬辰進饌儀軌)』
- 『고종신축진연의궤(高宗辛丑進宴儀軌)』
- 『고종신축진찬의궤(高宗辛丑進饌儀軌)』
- 『고종임인진연의궤(高宗壬寅進宴儀軌)』
- 국립고궁박물관, 『조선 궁중의 잔치, 연향』, 글항아리, 2013.
- 김종수, 『조선시대 궁중연향과 여악연구』, 민속원, 2001.
-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후기 궁중연향문화』 1~3, 민속원, 2005.
- 권도희, 「20세기 기생의 음악사회사적 연구」, 『한국음악연구』29집 , 한국국악학회, 2001.
- 조경아, 「조선후기 의궤를 통해 본 정재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2009.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