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역(경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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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도 지역의 역도 중 하나인 성현도에 속한 역으로, 오늘날의 경상남도 밀양시 상남면에 위치해 있었음.

개설

금동역(金洞驛)은 조선 세조 연간에 역제(驛制)를 41역도-543속역 체제로 개편할 때 성현도(省峴道)를 구성하는 역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경상도 밀양도호부에 위치하였으며, 갑오개혁 때까지 존속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고려전기 전국의 525개 역을 22개 역도(驛道)로 편성하면서 역참 제도를 정비하였는데, 이때까지 금동역은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세종실록』「지리지(地理志)」에 따르면, 금동역은 이동음역(伊冬音驛)이라는 명칭으로 설치되어 성현역 등과 함께 성현도에 소속되었다.

조직 및 역할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금동역에는 역리(驛吏) 240명, 역노(驛奴) 13명, 역비(驛婢) 8명과 대마(大馬) 1필, 중마(中馬) 2필, 복마(卜馬) 9필 등 총 12필의 역마가 배속되어 있었다. 경상도 지역의 역도인 성현도의 속역이었다.

변천

1460년(세조 6)에 경기도와 하삼도(下三道)의 역을 정비하였는데, 역로가 멀어 제대로 순시하지 못하는 등 각종 폐단이 생겼기 때문에 역승(驛丞)을 없애고 찰방(察訪)으로 하여금 여러 역도를 아울러 관리하게 하였다. 그에 따라 성현도에 소속되었던 금동역은 황산도(黃山道)의 속역과 성현도의 속역이 황산도로 통합됨에 따라 황산도에 속하게 되었다. 그 뒤 1462년(세조 8)에는 병조의 건의에 따라 각 도의 역참을 혁파하고 역로를 정비하였는데, 이때 성현도가 복구되면서 금동역은 다시 성현도에 속하게 되었다. 이후 조선시대 후기까지 성현도의 속역으로 존속하다가, 1896년(고종 33)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폐지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밀양도호부 조에 따르면, 금동역은 밀양도호부 남쪽 23리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오늘날의 행정 구역으로는 경상남도 밀양시 상남면 연금리 외금마을에 해당한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 『만기요람(萬機要覽)』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조병로, 『조선전기 역제사연구』, 국학자료원, 2005.
  • 오일순, 「고려시대 역제의 변동과 잡색역」, 연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0.
  • 정요근, 「고려전기 역제의 정비와 22역도」, 『한국사론』45, 2001.
  • 정요근, 「高麗·朝鮮初의 驛路網과 驛制 硏究」,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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