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동가제(告動駕祭)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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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고동가제 |
한글표제 | 고동가제 |
한자표제 | 告動駕祭 |
상위어 | 고유제(告由祭), 부묘제(祔廟祭) |
하위어 | 신연(神輦), 신주(神主) |
관련어 | 거가환궁(車駕還宮), 고종묘(告宗廟), 대상(大祥), 부묘도감(祔廟都監), 소상(小祥), 신과(晨課), 신주예종묘(神主詣宗廟), 연제(練祭), 혼전(魂殿) |
분야 | 왕실/왕실의례/흉례 |
유형 | 의식·행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대한제국기 |
집필자 | 신명호 |
시행시기 | 부묘제(祔廟祭) |
시행기관 | 부묘도감(祔廟都監) |
시행장소 | 혼전(魂殿)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고동가제(告動駕祭)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종실록』 오례 흉례 의식 부묘의, 『세종실록』오례 흉례 의식 부묘의 |
조선시대 왕의 부묘제에서 혼전에 모신 신주를 신연(神輦)에 옮겨 싣기 직전에 그 사실을 신에게 고하는 제사.
개설
조선시대에는 왕의 3년 국상 기간 중 27개월째에 혼전(魂殿)에서 담제(禫祭)를 지냈고, 이어서 길일을 골라 왕의 신주를 종묘로 옮겨 모시는 부묘제(祔廟祭)를 거행하였다. 부묘제는 시일(時日), 고종묘(告宗廟), 고동가(告動駕), 신주예종묘(神主詣宗廟), 신과(晨課), 거가환궁(車駕還宮)의 절차로 이루어졌으며 이 중에서 고동가가 바로 고동가제였다. 혼전에 모신 신주를 신연(神輦)에 옮겨 싣기 직전에 그 사실을 신에게 고하면서 제물을 올리는 것이 고동가제의 핵심이었다.
연원 및 변천
고동가제는 ‘동가를 고하는 제사’라는 의미이고, ‘동가’란 ‘거가(車駕)를 움직인다.’는 의미이다. 거가는 글자 그대로 거(車)와 가(駕)의 합성어인데, 거의 기본 의미는 ‘수레’이고 가의 기본 의미는 ‘멍에’이다. 따라서 거가의 기본 의미는 ‘수레’와 ‘멍에’ 즉 ‘탈것’이다. 그런데 전통시대 한국과 중국에서 거가는 단순한 탈것의 의미를 넘어 제왕의 행행(行幸)을 통칭하는 용어로 이용되었다. 제왕의 행행을 특별히 거가라고 통칭한 목적은 용어의 차별을 통한 제왕의 신성화와 상징화에 있었다. 고대로부터 동양의 제왕은 천하의 통치자였고, 그래서 한 곳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천하를 집으로 삼아 수레를 타고 길을 따라 돌아다니는 존재로 상징되었다.
한편 거가는 살아 있는 제왕의 탈것일 뿐만 아니라 세상을 떠난 제왕의 탈것이기도 했다. 고동가제는 특별히 세상을 떠난 제왕의 탈것이 움직이게 되었을 때 드리는 제사로서 유교의 3년상 중 부묘제의 한 절차였다. 한국의 역사에서 고동가제는 왕의 장례가 유교의 3년상에 입각해 정비된 『세종실록』「오례」에서 완전한 모습으로 나타난다(『세종실록』 오례 흉례 의식 부묘의). 이것이 약간의 변화를 거쳐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수록되어 조선시대 고동가제의 전범이 되었다.
절차 및 내용
유교의 3년상에 따라 조선시대의 국상 기간도 3년이었다. 이 기간 동안 왕의 신주는 혼령을 모신 건물 즉 혼전에 모셨다. 국상 후 1년이 지나면 연제(練祭)를 지냈으며, 2년째 제삿날에는 상제(祥祭)를 지냈는데, 이를 대상(大祥)이라고도 하였다. 상제를 지내고 2개월째에 담제를 지냈으며, 이후 길일을 골라 왕의 신주를 종묘로 옮겨 모시는 부묘제를 지냈다.
조선시대에는 부묘에 관한 일체의 업무를 담당하는 부묘도감(祔廟都監)을 설치하였다. 『세종실록』「오례」에 의하면 부묘의는 시일, 고종묘, 고동가, 신주예종묘, 신과, 거가환궁의 절차로 이루어졌는데(『세종실록』오례 흉례 의식 부묘의) 이 중에서 고동가가 바로 고동가제였다. 『세종실록』「오례」에 의하면 고동가제의 절차 및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담제가 끝난 후 길일을 골라 종묘에 부묘하는데, 부묘 하루 전에 종묘와 혼전에 고한다. 이어서 부묘 당일 혼전에서 왕의 신주를 옮겨 종묘로 모시는데, 옮겨 모시기에 앞서 고동가제를 거행한다. 이를 위하여 하루 전에 필요한 제물과 시설을 혼전에 준비한다. 당일 3각(刻) 전에 종친 및 백관들이 조복(朝服)을 갖추고 모두 혼전의 외문 밖으로 가서 대기하고, 1각 전에는 여러 집사 등이 제복(祭服)을 갖추고 문 안으로 들어가 필요한 준비를 한다. 혼전에서의 준비가 끝나면 왕은 면복을 갖추고 나온다. 찬례(贊禮)가 왕을 인도하여 혼전의 정해진 자리로 간다. 제례를 집행하는 집례(執禮)가 “사배(四拜)”라고 하면 찬례가 부복하고 꿇어앉아 “국궁(鞠躬), 사배, 흥(興), 평신(平身)”을 아뢴다. 왕은 그 순서대로 몸을 굽히는 국궁, 네 번 절을 하는 사배, 굽혔던 몸을 일으키는 흥, 몸을 반듯하게 세우는 평신을 행한다. 종친 및 백관들도 이와 같이 한다. 찬례가 왕을 인도하여 동쪽 계단으로 올라가 제상에 올릴 술잔인 준(尊)을 놓는 곳인 준소(尊所)로 나아가서 서향하여 서게 한다. 왕을 곁에서 모시는 신하인 근시(近侍) 한 사람이 술을 떠내고, 한 사람이 잔으로 술을 받는다. 찬례가 왕을 인도하여 들어가서 신주 앞으로 나아가 북향하여 서게 하고, 찬례가 고개를 숙이고 꿇어앉아 왕에게 ‘꿇어앉으라는 뜻의 궤(跪), 규를 꽂으라는 진규(搢圭)를 아뢰면, 왕은 순서대로 행한다. 종친 및 백관들도 꿇어앉는다. 근시 한 사람이 향합을 받들어 꿇어앉아 올리고, 한 사람이 향로를 받들어 꿇어앉아 올리면, 찬례가 향을 세 번 집어서 불에 사르라는 뜻으로 “삼상향(三上香)”을 아뢰고, 근시가 향로를 올려두는 탁자인 안(案)에 올려놓는다. 근시가 잔을 꿇어앉아 올리면, 찬례가 잔을 들라는 집잔(執盞), 잔을 올리라는 헌잔(獻盞)을 아뢰고, 잔을 근시에게 주어서 신위가 놓인 자리 앞에 드리게 한다. 찬례가 꿇어앉아 홀을 잡으라는 뜻에 집규(執圭), 고개를 숙였다 다시 세우라는 뜻의 부복과 흥, 조금 뒤로 물러나라는 소퇴(小退), 북쪽을 향하여 꿇어앉으라는 북향궤(北向跪)를 차례로 아뢴다. 대축(大祝)이 신위의 오른쪽에 나아가서 동쪽으로 향하여 꿇어앉아 축문을 읽는다. 이것이 이른바 고동가제로서 이 절차가 끝나면 신주를 신연에 옮겨 싣고 종묘로 간다.
생활·민속적 관련 사항
고동가제의 절차 및 제물은 일반적인 유교 고유제(告由祭)의 절차 및 제물과 유사하였다. 고유제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신에게 고하는 제사인데, 부묘를 위한 동가 역시 특별한 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고동가제는 조선시대 다양한 사유로 거행되었던 유교 고유제의 내용과 형식을 알려주는 중요한 의례 절차였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한국역사용어시소러스』, 국사편찬위원회, http://thesaurus.history.go.kr/.
관계망